오늘은 오후에 강릉대학에 갔다가 늦은 오후에 학교 앞에서 200번 버스를 타고 안목까지 갔다. 강릉대학과 안목은 이 버스의 두 종점이다. 이렇게 버스를 탄 일이 어쩌면 평생에 처음인 것 같기도 하다. 오늘 바다에는 녹색빛이 없었다. 독일에서 돌아온 다음 안목 바다에 오늘까지 네 번 갔는데 녹색빛도 들어있는 바다는 한번만 보았다. 녹색도 섞인 바다는 파란색도 더 다양하게 보여 가장 어여쁘다.
오늘은 무슨 일인지 모래밭에 갈매기가 유난히 많았다. 평소(그러니까 최근에 세 번 왔을 때)보다 두 배는 되는 것 같았다. 이 갈매기들은 어디에 알을 낳고 새끼들을 키울까 하는 물음이 떠오르기도 했다. 갈매기는 저 멀리 바다 위에도 한 무리가 있다. 이들은 원래 갈매기의 습성대로 물고기를 잡아먹으려 바다 위를 낮게 나르거나 바닷물에 앉아 있다. 하지만 모래밭의 갈매기는 사람이 던져주는 과자를 기다린다. 사람들은 자기가 과자를 던지면 갈매기들이 요란스레 달려드는 걸 재미있어 한다.
갈매기로서도 물고기를 잡아먹는 것보다 사람에게서 과자를 받아먹는 게 더 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에게 과자를 주느니 차라리 담배를 줘라"라는 말도 있듯이 과자는 좋은 음식이 아니다. 갈매기에게도 해로울 것이다. 그래서 사람의 손에 의지하는 갈매기들을 보는 내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하지만 일본발 방사능에 오염된 바다에 사는 물고기도 사실 갈매기에게 건강한 먹이가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도대체 인간은 저 어여쁜 새들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집에 돌아와서 한 일 가운데 하나는 김겨울씨의 동영상 "영어를 공부한 방법"을 본 것이었다. 김겨울씨의 이야기 가운데 그가 쓰는 표현(개념, 범주)에 동의할 수 없는 것이 딱 하나 있었다. 자신이 중고등 학교 시절 공부했던 한 교재를 소개하면서 이 책에 CNN, TIME지, AP NEWS, NEWSWEEK, 취임연설문, UN 연설문 등에서 가져온 "상당히 고급 수준의 문장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출처에서 쓰이는 영어가 고급이라는 (사실 우리나라에서 널리 유통되는) 판단에 나는 동의할 수 없다. 여기에 언급된 출처들은 모두 매우 대중적인 매체이고, 따라서 정말 고급 영어를 쓸 수가 없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TV 뉴스나 <한겨레 21> 같은 시사주간지나 대통령 취임연설에서 쓰는 한국어가 고급 한국어인가? 그렇지 않다. 이런 출처에서 쓰이는 한국어가 상당히 격식을 차린 (formal) 한국어이지만 매우 대중적이고 평이하고 그리 독창적이지 않은 한국어이다.
영어도 마찬가지이다. 진짜 고급영어, 영어라는 언어가 도달한 가장 우아하고 지적이고 창의적인 경지는 다른 곳, 즉 일부 문학 작품, 일부 예술비평문, 일부 인문학 학술저작에 있다. 위에서 김겨울씨가 언급한 출처에 쓰이는 영어는 중급 또는 아무리 높게 잡아야 중고급 영어라 할 수 있다.
물론 내가 말하는 고급 영어는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들도 거의 접하지 않으면서 살아가는 그런 영어이다. 우리나라 사람들 가운데에서도 한국어로 씌여진 수준 높은 문학 작품, 예술비평문, 인문학 서적을 읽는 사람의 비율이 도대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러므로 외국어로서 영어를 공부하는 우리가 이런 고급 영어를 배울 필요는 사실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CNN과 TIME 등에 나오는 영어가 고급이라고 말해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럼에도 내가 이리 따지고 드는 것은, 성질머리가 못된 것도 있겠지만, 'TIME 영어는 고급영어이다' 같은 말을 우리나라 사람들이 참이라고 믿음으로써 영어라는 언어, 나아가서 언어 자체에 대해서 사소하지 않은 오해를 하게 될까 우려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오해'라는 것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과소평가'라고 할 수 있다. 내 이야기를 해서 미안하지만 나는 CNN 영어를 들으면 99%를 이해한다. CNN 영어가 고급이라면 나는 고급 영어를 적어도 청해영역에서 거의 정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게 말이 되나?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게 말이 되나? 나 말고도 CNN을 거의 다 이해하는 사람은 한국에 많을 것이다. 우리가 다 고급 영어를 거의 다 알아듣는 사람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가 자기비하와 한국인 비하에 능한 사람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진짜 어렵고 수준 높고 나로 하여금 두 손 들게 하는 영어를 내가 알기 때문이다.
내가 하려는 얘기는 이것이다. 언어를 과소평가하지 말자. 언어는 광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