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차례 휩쓸고 간
폭염暴炎의 시간 뒤로
가을의 풋내가 난다
땡볕에
온몸을 내주었던
풀잎들도
이제
바람에 몸을 맡겨
긴 쉼을 하고
여름 내내
자태를 뽐내던
매미 떠난 빈자리에서
귀뚜라미의
달콤한 목청소리가
어설피 들려온다
바람은
느긋하게
쉬어가라 손짓하니
숲에서는
시간의 태엽도
천천히 돌아간다
뜨겁던
여름은 가고
지난至難한 시간도 간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빛이 난다
/
이른 아침에 수목원을 다녀왔다. 더위가 한풀 꺾이기는 했지만 아침부터 햇살이 눈부셨다. 늘 그렇듯 입구부터 마음이 평온해짐을 몸이 먼저 알았다. 수목원 입구에서 선선한 바람이 나를 반겨주니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고 숲의 진한 향기를 들이마셨다.
숲은 조금씩 가을빛을 띠고 있었다. 여름 내내 바싹 말라버린 풀잎들을 비집고 어느새 새순이 하나둘 올라오고 있었다. 한 걸음 뗄 때마다 바람숲 속에 서있는 착각이 들 정도로 어느 방향으로 움직여도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기온이 높지 않아 사뿐사뿐 가볍게 오름 정상에 올랐다. 오늘은 멀리 수평선 너머 작은 섬들이 올망졸망 모여 있는 것까지 보이고 뒤편은 백록담에서 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이 뭉게구름이 한라산 정상에 걸려 있었다.
터벅터벅 정상에서 내려와 오름 중간쯤에 이르러 벤치에 앉았다. 여름 내내 우렁차게 울어대던 매미는 다 어디로 갔는지 풀벌레들의 나근나근한 울음소리가 낮게 들려왔다. 눈을 감으니 숲의 정경이 환히 보이고 풀벌레 소리, 새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바람결에 스치는 이름 모를 나무와 풀꽃들과 대지의 풋풋한 내음이 저마다의 향으로 코를 자극했다. 고요히 흐르는 시간이 느껴졌다. 아주 느릿느릿 흘러가는 이 흐름에 몸을 맡기니 마음은 한없이 평온했다.
뜨겁던 여름은 이제 가고 있다. 잔나비의 노래 가사처럼 ‘뜨겁던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 또다시 찾아오는 누군가를 위해서 남겨두겠다, 그리운 그 마음 그대로 영원히 담아두겠다’는 말이 참 따뜻하게 다가오는 밤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hG044Tfz938&list=RDhG044Tfz938&start_radio=1
# 뜨겁던 여름은 가고 / 2021. 8. 29. punggye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