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장無盡藏

by 풍경

마음은

참 신기해요


있는 듯하면서

없는 듯하고


잡힐 듯하면서

아닌 듯하지만


온갖 물건들이

마음에서 다 나와요


마음 창고에는

보물이 가득해요


내가 무엇을

꺼내느냐에 따라


색깔도 달라요

모양도 달라요


사랑을 꺼내면

사랑이 샘솟고


지혜를 꺼내면

지혜가 샘솟아요


마음은

보이지 않는

마법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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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근무지는 제주시내에 위치한 과대학교인지라 주말마다 각종 공무원 시험을 치르는 일이 많다. 얼마 전 교원임용고시를 앞두고 아이들 개인 짐들을 사물함으로 옮기고 학급 살림살이도 빈 사물함으로 이동시키는 등 대대적인 대청소가 이루어졌다. 이럴 때는 꼭 구시렁거리는 몇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며칠 전부터 일반 공무원 시험과 달리 교원임용고시는 자신이 간절히 원하는 꿈의 직장에서 시험을 보는 것이기에 얼마나 마음이 설레면서 긴장이 될지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우리가 청소를 깔끔히 해야 하는 이유를 딱딱하게 훈계하기보다 예전에 실제 있었던 일화를 들려주었다.


“어느 여학생이 자기 책상 서랍 안에 정성이 담긴 손편지와 초콜릿을 넣어두었대. 시험 당일 아침 잔뜩 긴장했던 수험생이 서랍 안에 있던 그 글을 읽고 감동을 받았나 봐. 시험을 무사히 잘 치르고 나서 익명의 소녀에게 고마움을 전해 달라고 학교에 연락이 왔었다는구나. 나의 작은 마음 씀씀이가 누군가에는 큰 힘이 된단다. 우리가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교실을 깨끗하게 청소하면 시험 보는 언니, 오빠들이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시험을 치르지 않을까?”


이 말이 아이들에게 효과가 있었는지 군소리하는 학생 하나 없이 여느 때보다 더 열심히 교실 곳곳을 깨끗하게 청소했다. 아이들이 모두 하교하자 본격적으로 고사장 준비를 진행하는 분들이 학급마다 투입되어 책상 배치며 고사장 안내사항 부착 등 고사장 정비에 필요한 일들을 분주히 하고 계셨다.


얼마쯤 지나서일까? 진행 요원 한 분이 손에 무언가를 들고 교무실로 들어오셔서 나를 찾았다. 우리 반 책상 서랍 안에 물건이 들어있었는데 원칙상 모두 치워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자세히 보니 손글씨가 적힌 몇 장의 메모지와 달달한 초콜릿, 막대사탕 등이었다. 정리하시는 분들도 아이들 마음이 너무 기특하다고 하셨지만 한편으로는 수험생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고 역으로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며 가지고 온 것이다.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이 안타까웠지만 틀린 말도 아닌지라 일단은 돌려받았다.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아이들의 순수함을 지켜주기로 했다. 그래서 며칠 뒤에 아무 일도 없는 듯이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얘들아, 얼마 전 임용고시 치른 수험생에게서 학교로 전화가 왔는데 우리 반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시험 잘 치렀다고,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해달라고 했다는구나.”


며칠이 지났다. 나는 아이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의 계획이 순수하지 않음을 뒤늦게 알아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그저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뿐이었지 어떤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은 아닐 것이다. 아이들의 천진한 마음에 재를 뿌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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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진장無盡藏 / 2021. 12. 4. punggye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