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虛空

by 풍경

허공은

텅 비어있어

무엇이든 채울 수 있는

맑은 가슴


해와 달, 구름

산과 들, 바다

나무와 새, 꽃...

모두가 허공 안에 있네


허공은

삼라만상 생멸하는

모든 것들과

대우주마저 품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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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친구가 제주 한달살이를 하러 내려왔다.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 프로그램으로 전환되는 사업이 많아지자 굳이 서울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여 과감히 제주행을 결정한 것이다. 업무와 휴식을 병행하는 친구의 결단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밖으로 바다가 내다보이는 한적한 시골 해변가 펜션을 찾아 나섰다. 제주 시내에서 한 시간 가량 소요되는 거리인지라 마음은 소풍 나서는 아이처럼 설렜다.


요즘 제주의 하늘은 광대무변廣大無邊하다. 눈꽃이 장관을 이룬 한라산과 주변 오름의 원만한 산세가 함께 어우러진 모습을 차 창밖으로 내다보니 가슴이 탁 트였다. 게다가 드넓은 하늘에는 장엄한 구름이 사방으로 넓게 퍼져 있어 세상 속에 나는 너무나 미미한 존재로 여겨졌다. 허공은 텅 비어 있으나 마치 어머니의 품처럼 세상 모든 것을 끌어안아 다 품어주는 것 같았다. 그것은 한량없는 너그러움이요 자비慈悲였다.


역시나 길치인 나는 똑똑한 내비게이션의 말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산간과 바닷길을 헤매 돌다가 결국 눈앞에 펼쳐진 바다 앞에서 그만 넋을 놓고 차를 세웠다. 이왕 헤매는 거 바다나 실컷 보고 가자는 느긋함이 생겼다. 털썩 주저앉아 허공과도 같은 무심이 되어 텅 빈 하늘을 올려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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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공虛空 / 2021. 12. 6. punggy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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