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는
텅 빈 성에
무장武裝한 노병老兵이 서있다
그는 젊음을 다 바쳐
최소한의 휴식도 마다하고
견고한 성벽城壁을 지키고 있다
그는
오지도 않고
올 리도 없는
적의 공습攻襲에 대비해
철벽을 쌓고 대치對峙중이다
바람은 불어오고
꽃들은 피고 지며
삶은 저마다의 빛깔로
다가와 춤을 추는데
그만이 칠흑의 밤이다
오지도 않을 적은
처음부터 있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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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생각에 발목이 붙잡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가 많다. 무수한 걱정과 불안, 두려움 등이 끊임없이 나를 괴롭힌다. 그래서 자신만의 견고한 성을 쌓고 벽을 만들지만 늘 이 세계가 붕괴될까 두려워 전전긍긍한다. 특히 무의식의 끝에 교묘히 숨어있는 에고(ego)는 끈질기게 정체를 숨기고 나를 조종한다.
오랜 세월 생각에 끌려 다니며 분별分別의 감옥에 갇혀 지냈다. 생각은 잠시 왔다가는 손님이지 적은 아니다. 그 생각이 어찌하였건 간에 그저 허용해주고 편안히 돌아가게 해 주면 그만인데 오랜 습성의 뿌리가 깊이 박혀 있어 스스로 붙들고 있으면서 붙잡혔다고 한다. '적'이라는 단어도 생각이 명명命名한 것일 뿐이다. 적이라고 여기는 생각의 고정된 시스템을 바꾸면 오가는 생각들을 유연하게 흘려보낼 수 있지 않을까.
# 무장해제武裝解除 / 2022. 4. 30. punggye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