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햇살입니다
나는 바람입니다
나는
햇살이 되어
바람이 되어
붉게 익어가는 중입니다
나는
서두르지 않고
하루하루
당신을 맞이할 준비를 하며
묵연히 기다리는 중입니다
어느 봄날
맑은 소식이 들려오면
누구든 날 데리러 오세요
나를 깨우러 오는 이라면
먼 길 떠나는
동박새여도 좋아요
바람 따라 일렁이는
청보리여도 좋아요
당신과 나는
시절인연時節因緣이 되어
필연必然으로 만날 테니까요
/
아주 가끔, 고민의 시간이 길어질 때 뜬금없이 아이들에게 물어보곤 한다. 의외로 아이들은 간명하게 답을 주는 경우가 많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며칠 전 아침이 그랬다.
“얘들아, 꼭 이루고 싶은 일이 있는데 능력이 부족한 것 같고 점점 용기도 없어진다. 그만두는 게 나을까? 아니면 그럼에도 해야 할까?”
두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내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인다.
“꽃들도 피는 시기가 모두 다른 것처럼 선생님도 꽃 피는 시기가 다른 거예요. 늦게 피는 꽃이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잖아요.”
“열등감을 갖지 말고,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꾸준히 실력을 쌓으세요. 큰 그릇은 늦게 완성된다는 말이 있잖아요. 대기만성大器晩成이요.”
저마다 한 마디씩 하거나 눈빛으로 진지하게 말하고 있었다. 절대 포기하면 안 된다고.
아이들의 천진난만함이 너무나 사랑스럽고 기특했다. 나를 붙들고 있던 물음에 대한 답은 바로 저 아이들에게 있었다. 스승은 멀리 있지 않다.
# 시절인연時節因緣 / 2022. 5. 15. punggye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