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아淸雅한
빗소리가
온 숲을 적시니
새들도 목청껏
제 소리를 뽐내고
숲의 정기가
서려 있는
솔잎에는
맑은
옥구슬이
방울방울 맺혔다
꽁꽁
숨어 있던
노루와 꿩도
밖으로 나와
한가로이
긴 쉼을 한다
인적이 없는
숲에는
태고太古의 고요가
살아 숨 쉬니
선경仙境이 따로 없다
/
한때 날씨는 수목원 산책의 중요한 변수였다. 얼마 전까지도 비 예보는 산책을 포기하는 변수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날씨는 그리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지 않는다. 변수라 할 것도 없지만 마음이 내키면 그냥 운동화 끈을 질끈 매고 집을 나선다.
오랜만에 우산을 쓰고 비 내리는 숲길을 산책했다. 평소와 달리 사람들이 없어서 살짝 당황했다. 그래서일까, 인적이 뜸한 숲에는 관객 없이 오직 숲의 주인들만이 남아 호젓한 느낌이 들었다. 새들도 목청껏 노래를 부르고 이파리와 꽃잎들은 옥구슬 액세서리로 우아하게 몸치장을 했다.
오늘은 평소와는 반대로 왔던 길을 되짚어 걸어봤다. 그리고 샛길을 따라 숲 안쪽까지 조밀조밀 발을 디뎠다. 유독 머리 윗부분이 빨간 꿩 한 마리가 한가롭게 거닐다 나를 보고는 서둘러 뒤뚱뒤뚱 달아났다. 사진을 찍을 틈도 없이 황급히 달아나는 뒷모습이 귀엽기까지 했다. 한참을 가서야 안심을 했는지 털썩 주저앉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오늘은 오름 정상은 가지 않기로 하고 중턱에 난 꼬불꼬불 샛길을 걸어 다녔다. 대나무 숲길로 방향을 트니 이번엔 노루 한 마리가 보였다. 겨울에나 가끔 볼 수 있는데 어인 일로 내려왔을까. 여유롭게 앉아 사색에 잠겨 있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사진을 찍어도 별로 개의치 않는다. 잠시 몸을 일으켜 대나무 숲으로 가서 열매를 따 먹는다. 아주 가까운 거리여서 살며시 다가갔다. 순간 서로 눈이 마주쳤다. 얼음!
더 이상은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사색을 마저 하기로 한 모양이다. 그만 방해하기로 하고 발길을 돌렸다. 무엇에 홀린 듯 숲길을 헤매다 보니 마치 금지된 곳에 몰래 들어온 침입자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니면 인간은 갈 수 없는 곳에 나만 초대받은 특혜였을까. 꿈길을 헤매다 온 것 같은 오묘한 기분이 아직도 남아 있다. 꿈에서 깨니 그곳이 진정 선경仙境이었구나!
# 선경仙境 / 2021. 7. 4. punggye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