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은화金銀花

by 풍경

북풍한설北風寒雪

몰아치는

기나긴 겨울밤에

칠흑빛 사연들은

가슴께 깊이

고이 접어 묻어두고

어스름 그믐의 밤에

하이얀 달빛

한 조각을 바늘 삼아

한 땀 한 땀

주름진 삶을

기워내며 공그르니

시커멓게 그을린

고단한 시절이

황금빛 지혜가 되어

한 송이 금은화로

맑게 피어났구나

/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화단 관리가 온전히 어머니의 몫이 되자 어머니께서는 도저히 힘에 부쳐서 곧 없애버리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몇 해 지난 지금 그때보다 더 울창한 화단이 되었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대형 앵글까지 짜서 화단 가꾸기에 돌입하셨다.


제주 여인의 강한 기질을 물려받은 어머니는 생활력이 강하시고 때로는 제주의 바람처럼 우렁차고 투박하면서도 뒤끝이 없으시다. 그런 어머니에게서 문득 꽃 욕심을 부리는 소녀 감성이 느껴질 때면 세월이 어머니를 모질게 만든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꽃을 유독 좋아하시는 것을 안 지도 얼마 되지 않는다. 자식들 다 독립시키고 주어진 삶의 역할에서 조금씩 놓여나기 시작하니 누구의 어머니요 딸이 아닌 한 사람으로서의 지극히 사적인 모습을 보게 된다. 그래서인지 친정어머니를 보면 인동초가 떠오른다. 이름에 걸맞게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맑게 피어나는 인동초를 보면 숭고함이 느껴진다. 그래서 꽃말도 헌신적인 사랑일까.

지난주에 친정집에 가보니 벽에 치매 달력이 걸려 있었다. 예전에 어머니께서 살면서 가장 미련이 남는 일이 재봉 학원을 다녀보는 것이라 했다. 바느질 솜씨도 수준급이고 미적 감각도 뛰어나셔서 젊어서도 옷을 잘 입는 편이셨다. 그림을 보니 색을 보는 감각은 여전하시다. 평생 이루지 못한 꿈은 가족들을 위해 바느질하면서 만든 다양한 물건들로 대신했다지만 그림 그리는 일에도 소질이 있으시니 안타까운 마음이 올라왔다.


흔히 어머니 연령대들은 희생을 강요받은 세대라고 말하지만 상황이 어찌 되었건 간에 그 세월 속에서 어머니는 삶이 당신에게만 머문 것이 아니라 인동초처럼 굳건히 가족과 타인에게 이익이 되는 삶을 사셨기에 충분히 거룩하고 숭고하다. 어머니께서 살아오신 길과 그 길에서 올곧게 굳건한 의지로 펼쳐내신 삶을 존경한다.


# 금은화金銀花 / 2021. 7. 8. punggy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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