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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이라는 말

2부 봄 07

by 싱싱샘

딸이 다녀갔다. 세 번째 정기 휴가다. 일곱 시 반, 팔십 킬로를 달려 기숙학원에 도착했다. 아침은 훤하고 아이들 싣고 대전으로 향하는 버스는 나를 스친다. 대구, 부산, 광주 같은 이름표 단 버스가 출발을 앞두고 있고 다 큰 아이들이 어디선가 와르르 쏟아진다. 스무 살 언저리 아들딸들을 지나 내 차가 정문을 통과한다. 주차장에서 잠시 기다리는데 딸이 나타난다. 뒷좌석에 짐 두고 앞문 여는 딸을 향해 안녕, 커다랗게 외친다. 두 번째와 세 번째 휴가 사이 언젠가, 안녕 하고 자주 인사하기로 마음먹었다. 길게 끄는 안녀엉에 가까운, 꼭 한 달 채우고 마주 보며 하는 인사다. 휴가를 활짝 여는 말이기도 하다.


딸의 4월 휴가 계획은 머리 다듬고 여름 추리닝 사기. 미용실은 예약해 두었고 쇼핑은 금요일 오후 함께 다녀오면 되었다. 그런데 휴가 전날 메시지로 그 시간에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고 알려왔다. 추리닝은 급한 게 아니었나 보구나. 알겠다고만 했었다. 첫날 집에 도착해 미용실 가기 전, 주말엔 복잡해서 쇼핑하기 힘들다고 하니 갑자기 큰소리다. 나도 지지 않았다. 아니, 그런 건 미리 말했어야지. 금요일에 시간 보낸다고 했다가 약속 잡을 땐 그런 생각도 했어야지. 쇼핑이 중요하면 스스로 일정을 챙겼어야 한다는 뻔한 말인데, 갑자기


“나는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들어가고 싶다고! 한 달을 기다린 3박 4일이라고!”


재수학원에서 너는 한 달을 꼭꼭 참고 있구나. 이해하면서도 나는 다 받아주는 온탕 엄마가 아니라 기어이 찬물을 한 바가지 끼얹었다. 나는 할 일이 있는데 금요일 일정 비우고 기다린 건 나라고. 네가 바꿔놓고 어쩌라고. 목소리 높이는 사람과 차분한 사람, 힘든 사람은 언제나 전자다. 그런데 우리는 당사자에게 울지 말고 말하라고, 차분하게 말하라고 이야기한다.


가족 통틀어 아무도 재수 경험이 없어 오직 내 친구 한 사람만 딸의 마음을 이해한다. 한 석 달 씩씩했고 별 문제가 없어 내가 놓쳤나 보다. 이 자식 엄마랑 약속해 놓고 자기 마음대로 바꾸네, 친구가 좋구나, 한발 양보하지, 그런 마음이었는데 자식도 결국 타인이라 내 마음이 우선이었다. 순간 아차 했는데 서둘러 미용실 보내며 휴전했다. 머릿속에서 나머지 일정이 착착 재조정됐다. 절대 미리 말은 안 한다. 엄마도 사람이니까. 양보 속에 숨은, 배려 뒤에 남는 서운함. 그 감정을 잘 다루는 것이 앞으로 할 일이다. 섭섭함에는 무언가 없어지는 애틋함이 담겼으니 그만큼 충만했다는 증거로 삼는다.


‘장 보러 갈 거니까 어여 와.’ 친구 만나고 집으로 출발한다는 딸의 메시지에 답을 보냈다. 우리는 술을 사러 간다. 중학교에 가며 이제 커피를 마셔도 좋다, 고등학교에 가며 가족과 함께라면 술 한잔은 괜찮다고 허락했는데 스무 살 되고 어쩌다 재수생이 된 지금 휴가 내내 술이다. 나까지 술바람이 불었다. 그 장단에 맞추다간 딸 휴가 후 내 휴가에 들어갈 듯하여 나는 딱 하루만 합류하기로 했다. 하이볼, 위스키, 라거, 청하까지 술꾼 냉장고를 아름답게 채웠다. 그날도 집에 와서 한잔했을걸.


아주 어린 날 딸이 그랬다. 나는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예쁘고 하고 싶은 것도 다 할 거야. 나는 입을 쩍 벌렸다. 엄마가 하나 먹어봐도 될까. 줄 수 있을지 모르겠네. 천연덕스러운 표정이었겠지. 저런 말은 누가 가르친 거야, 가르친다고 되는 거야. 그 소녀가 커서 자기는 영원히 살아서 해보고 싶은 걸 다 하고 싶다는데 나는 여전히 입을 벌리고 있다. 그러니 아디다스 매장에서 두 시간째 추리닝 바지를 고르고 있는 것이다. 놀랍지도 않은 건 결국 아디다스에서는 후드 집업만 사고 나이키에서 겨우 추리닝 바지를 살 수 있었다는 것. 나는 전날 오전 오후 모두 일이 있었는데 정말 표정 관리를 못 하겠더라. 피곤이 주룩주룩 내렸다고 해야 할까. 날도 좋고 사람도 많고, 먹구름은 내 위에만 있었다. 쇼핑에 지쳐 벤치마다 걸쳐진 휴대폰 붙든 남편과 아이들이 내 마음인 적은 처음이었다. 그들 위에도 작은 먹구름 있었겠지. 조그만 비들이 내리는 상상을 했다. 마음에 꼭 드는 추리닝을 사고 우리는 집에 갈 수 있었다. 여섯 시간만의 귀환이었다. 덕분에 나도 득템 하나 했으니 불평하지 않겠다.


***


딸은 아침부터 공들여 화장을 했다. 내가 올봄에 산 티셔츠가 마음이 든다고 했다. 젊은 딸 칭찬에 넋 놓은 사이 쏙 골라 입고 나갔다. 속없이 웃을 수 있어 또 좋은 게 엄마일지니. 미국으로 떠나는 친구와의 약속인데 사진을 수십 장 찍어와 보여주고 싶은 건 아직 스무 살, 엄마와 연결된 케이블이 있어서다. 훗날 이 충만함이 그리울 걸 알기에 적어둔다. 그러면서도 나는 이렇게 말했다. 할아버지가 옛날에 호주, 뉴질랜드 여행을 다녀왔어. 그땐 소니 비디오카메라로 영상 찍던 시절이었거든. 재밌는 걸 보여주겠다는 거야. 그런데 끝없이 풀밭만 나오더라. 여행은 다녀온 사람만 재밌고 사진은 거기 있었던 사람에게만 의미 있다는 말이야. 분위기 깨는 엄마이지만 웃으며 충전하는 소녀를 보며 나는 나의 엄마를 생각하게 된다. 부모 자식으로 만나 육십 년이라는 시간을 부여받았다. 하나였다 둘이 되고, 사랑하고 미워하다 끝내 화해에 이르라고 신이 준 시간인데 나는 아직 화해하지 못했다. 어쩌면 우리는 완전하게 하나였던 시간이 부족했을까, 스물셋 너무도 어린 엄마라서 그랬을까 헤아린다. 새엄마만 다섯이었다던 상처투성이 엄마의 어린 날을 나는 가끔 꺼내 들여다본다. 엄마와의 시간이 길게 남지 않았을 텐데 화해는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단번에 되는 것도 아니겠지. 이루어가는 것이라고, 나는 가고 있다고 하늘에 보고한다.


말다툼이 한 번 더 있었다. 왜 싸우게 되었을까 생각해 본다. 매일 다지는 의지로도 재수생활이라는 건 딸에게 울컥할 일이고 내 입장에선 계속 위기 상황으로 살 순 없으니 나름 적응한 터라 할 말이 나온 거다. 그래도 봄이었다. 벚꽃 지고 겹벚꽃 한창이었다. 출근길마다 살핀 두 그루 겹벚꽃은 딸을 기다려 주었고 우리는 2024년의 봄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셋째 날이었나. 딸은 저녁 반주로 마신 거봉 하이볼을 종이컵에 옮겨 담았다. 들고 걸으니 사진이 흔들리게 찍혔다. 그게 멋이라 했다. 나는 마음에 담았다. 조금만 있다 피어라, 주문처럼 외웠던 시간과 함께. 우리도 늦게 피어 좋은 일이 있었으면.


기숙학원 들어가는 날엔 꼬박 세 시간 반을 운전하게 된다. 화장실도 들르지 않는다. 그 정도쯤이야 몸은 괜찮은데 마음은 조심히 다루어야 한다. 친정엄마가 미국 사는 남동생이 왔다 가면 그렇게 슬프다는데 나는 그 말이 싫었다. 있을 때나 잘하지. 엄마가 나를 오십 년 기르고 나는 딸을 이십 년 길러서 반은 이해하는데도 그렇다. 엄마의 허전함을 안다. 견뎌보라는 거다. 못됐다. 아이가 첫 휴가 나왔다 들어가고 엄마가 전화했다. 네 마음이 오죽하겠냐 묻는 전화였는데 오죽이라는 말에 기분이 나빠져 냉정하기 그지없게 받았다. 원망 속에 나를 채워주지 못한 미움이 들었다. 그러니까 미움 속엔 나를 채워달라는 사랑이 들었다. 철 지난 얘기다. 나는 엄마와 다를 것이다. 그러면서 졸졸 따라가게 될 것이다. 내가 당신과 다르지 않다는 걸 하나씩 깨닫는 걸음들. 그것이 내 방식의 화해하는 길이지 않으려나.


우리 모두는 몇 번의 안녕 끝에 영원히 안녕하게 될까. 그런 생각에 이르면 모나고 못된 나의 마음이 조금 둥글어진다. 헤어지는 순간은 볕 좋은 한낮이었는데 결심대로 안녕, 인사하지 못했다. 이유는 마음에 쓴다. 한 달간 안녕. 다음번에는 헤어질 때도 인사할 거라 믿는다. 처음부터 환하겐 못 하겠지. 그러다 환하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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