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피는 차분하고 진지한 느와르 영화입니다. 그 동안 한국 느와르 영화가 보여주던 개성이 있는 캐릭터가 중심이 되지도, 중간 중간 웃음으로 쉬어갈 수 있는 부분을 주지도 않습니다. 차분하고 진지한 전개가 신뢰를 주지만, 조금 지루한 것이 사실입니다. 또한 인물의 깊이와 매력을 배가 시키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끝내 아쉬운 마음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잔인하고 폭력적인 장면을 보지 못하시는 분들에게는 추천해드릴 수 없는 영화입니다.
구암에서 건달 생활을 하고 있는 희수는 마흔이라는 나이를 먹었지만, 큰 부나 성공을 얻지 못하고 지리멸렬한 생활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희수에게도 새로운 선택을 할 기회가 찾아옵니다. 그것은 사랑하던 여자와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되어, 누군가와 함께 미래를 꿈꿀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잔혹한 건달의 생활은 쉽게 이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인간적이고 의리를 추구했던 희수의 선택은 아이러니하게도 소중한 모든 것을 잃게 만드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게 됩니다. 이런 비극의 설계는 훌륭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희수가 그 동안 어둠의 세계에서 묻힌 피의 대가이기도 합니다.
용강은 희수에게 저주같은 예언을 하죠. '너같은 인간은 갈곳이 두군데 밖에 없다. 저 밑바닥 끝까지 떨어져 추락하거나 저위로 올라가 왕이 되거나. 하지만 그 끝은 한없이 쓸쓸하고 외로울 것이다.' 그 예언은 끝내 이루어지고 맙니다. 희수는 모든 것을 잃고 난 후에야 구암의 왕이 된 것이지요. 그 폭력조직의 우두머리라는 타이틀 속에는 얼마나 많은 희생이 숨어있는 것인지. 쓸쓸한 희수의 뒷모습으로 영화는 끝까지 비판적인 시선을 잃지 않습니다.
영화는 폭력조직을 의리와 충성, 믿음이란 말로 미화하거나 포장하지 않습니다. 희수는 충직하고 의리를 지키는 인물이었지만, 뼈아픈 배신과 폭력 속에 버려지게 되죠. 이로서 이 세계는 야비한 배신과 냉철한 힘의 논리만이 횡횡하는 냉혹한 세계였다는 것을 폭로합니다. 영화는 그럼으로서 폭력에 대해 냉철하고 비판적인 시선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90년대 홍콩 느와르 영화에서는 이 폭력을 낭만이란 말로 포장하곤 했습니다. 그런 경향들 속에서 지존파라는 희대의 폭력조직이 생기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습니다. 범죄폭력 단체를 다룰 때에는 창작자로서 윤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우 배우의 무게감있는 연기는 영화를 안정적으로 이끌어 갔습니다. 영화에는 정말 좋은 배우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특별하게 한 인물이 돋보이진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흘러갈수 있도록 좋은 연기들을 보여준 것 같습니다. 단점이 있다면 느와르 장르이다보니 여성배우를 보기 힘든 점은 아쉬웠습니다.
https://youtu.be/hjLp2xLfZvM?si=hduapYLXKydfnu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