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멜리에스필름 Jun 06. 2024

존오브인터레스트 리뷰와 해석

 한 가족의 평온한 전원 생활을 보여주는 영화는 더 없이 정적이다. 하지만 이들이 살고 있는 바로 벽뒤에는 죽음의 수용소가 있다. 영화는 수용소장과 그의 가족들이 타인의 고통에 둔감하고 관심없어 하는 것을 카메라를 통해 보여주는데. 카메라는 한번도 수용소 내부를 비추지 않는다. 그렇게 그들은 공존하지만 같은 세계에 살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성을 상실한 채 자신의 욕망 만을 쫓는 수용소장의 아내 역을 맡은 산드라 휠러의 연기력은 놀랍다. 무표정한 얼굴로 감정의 변화를 드러내지 않은 채 자신의 집에서 일하는 유대인 하녀에게 스스럼 없이 너는 내 말 한마디면 잿가루가 될거라는 악담을 쏟아 붇곤 한다. 반성과 성찰을 잃어버린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된 것 같았다. 


 소장의 정원은 수 많은 작물들과 아름다운 꽃들이 가득하다. 수용소의 척박한 삶을 비웃기라도 하는 것 같다. 불과 몇 센티미터를 사이에 두고 대비되는 삶을 산다. 수영을 하다. 유대인의 뼛조각을 발견하고 오물이 묻은 것처럼 몸을 씻는다. 이들이 유대인에게 느끼는 인간적인 감정은 거의 없고, 혐오하는 오물을 다루는 듯이 행동한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그들이 가꾸는 정원은 유대인들의 뼛조각을 비료로서 작물을 키우고 있다.(물론 소장이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지는 모르겠다.)


 어느날 소장, 아내의 어머니가 집에 방문을 하게  되는데, 아내는 이곳에서의 성공적인 삶을 자랑하고 어머니 또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밤이 되고 수용소의 참상을 알게된 어머니는 말도 없이 새벽에 떠나게 된다. 어머니는 자식의 모든 것을 감싸안는 존재다. 영화 속에서 어머니는 인간이었으면 가질 법한 연민과 양심의 존재를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어머니마저 떠남으로서 이 가족은 인간으로서의 양심을 기대할 수 없고, 어떠한 희망도 없는 존재들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영화의 후반부에 소장이 어딘가를 응시하며 구역질을 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영화는 현재의 아우슈비츠와 그곳을 청소하는 사람들 그리고 수용자들의 낡은 신발과 사진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다시 과거로 돌아가 구역질을 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소장과 가족들은 끊임없이 유대인에 대한 혐오를 보여줬지만 결국 혐오스럽고 토악질이 나오는 존재는 수용소의 유대인들이 아닌, 소장과 그들 가족 그리고 그와 같은 뜻을 함께한 독일인 들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듯하다.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 갈 때, 정말 인간으로서 듣기 힘든, 무시무시한 배경음악이 들린다. 한 번도 폭력적인 장면이 등장하지 않는 영화였지만, 이들의 평온 했던 일상들이 얼마나 폭력적이고 무시무시한 일상이었는지 곱씹게 되었다. 많은 관객들이 이 음악이 들리는 와중에 도망치듯이 극장을 빠져나갔다. 사실 나 또한 도망치고 싶었지만, 이 영화를 보는 것에 대한 의무가 있다고 생각해서 간신히 버텼다. 영화를 보고 나오니 정신적으로 무척 힘들었다. 정말 무시무시한 영화였다. 극단적인 대비를 통해 미학적으로 뛰어난 성취를 거두고 있다. 의미 있는 야심찬 시도였고, 훌륭한 영화였다. 하지만 재미를 바랄 수는 없었다. 그것은 윤리적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https://youtu.be/R0lm8MO4P1w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