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수가 없다는 박찬욱 감독의 신작 블랙 코미디 스릴러 영화입니다. 고졸 노동자에서 중산층 관리자가 되기까지 고생을 해온 만수와 그의 가족에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온 재난 같은 실직으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입니다. 재취업을 위해 갖은 노력을 하지만 실패하고 결국 자신의 경쟁자들을 살해하고 그 자리를 차지하고자 하는 계획을 실행하게 됩니다. 진지하고도 슬픈 현실 속에서 이어지는 유머는 마음 편하게 웃을 수 만은 없는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합니다.
어쩔수가 없다는 먼저 노동자로서로의 우리의 삶을 바라보게 합니다. 회사의 고용 상태에서만 생계를 유지할 수는 대부분의 시민들의 모습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함으로서 이야기에 더 몰입하게 합니다.
하지만 만수는 평범한 시민은 아니죠. 중산층으로서 좋은 집을 소유하고 많은 것들을 향유하는 삶을 삽니다. 그러던 중 갑작스런 실직은 그의 빈궁했던 과거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는 어떻게해서든 그 과거로 돌아가지 않으려 합니다. 이미 과거의 고통이 너무 컸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만수에게 그 동안의 삶을 포기하는 것은 굶어죽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리라 생각합니다.
처음 만수는 자신의 동료들 중에 해고 리스트를 작성할 것을 요구 받지만 거절한 후 자신이 해고되고 맙니다. 해고 되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노동자로서 자신의 일에 대한 성취감을 느끼고, 동료에를 느끼는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들어닥친 해고라는 현실은 인간으로서의 예의를 저버리게 만듭니다.
만수의 선택은 곤궁함보다는 다른 사람을 죽이면서까지 자신을 지키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영화 속 만수는 살해를 택하지만 현실 속에서 노동자들은 많은 시험을 받죠. 경쟁자와 경쟁을 깨끗하지 않게 한다든가. 자신의 동료들을 과감히 버리는 선택을 통해 살아남는 노동자들도 많으니까요. 즉 삶을 적자 생존으로 보고 경쟁과 생존을 위해 치열한 전투를 벌이게 만드는 것이죠. 영화는 그렇게. 노동자들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와 자본주의 사회의 기업들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인간성을 잃게 되는 노동자들의 비루한 삶의 모습을 조명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만수의 선택이 옳은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영화 또한 그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내리지는 않습니다. 그저 그 치열한 전투의 과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마무리 짓게 됩니다. 어쩌면 이 가족은 치열한 생존 경쟁을 펼쳐야만 하는 한국 사회의 시민들의 모습으 축소판일지 모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많이 씁쓸한 영화였습니다.
영화는 만수의 치열한 전투를 우아하고 웃음을 잃지 않으면서 그려 나갑니다. 하지만 언제나 만수의 상황은 위태롭게 그려지죠. 아내에게 자신의 부정을 들키지 않으려하면서도 치열하게 생존을 위해 타인들을 제거해 나가는 그의 모습을 그림으로서 긴장감을 배가 시킵니다. 그리고 그에게는 자폐 증상을 보이는 딸이 있습니다. 이 아이는 사람들과 관계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천재적인 예술적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만수의 모든 악행이 끝났을 때. 그의 재능이 꽃을 피웁니다. 영화의 후반부 아이의 첼로 연주와 함께 보여주는 만수와 가족들의 비애에 찬 모습이 슬프면서도 참 아름답게 느껴지더군요. 저는 이 장면을 보고서 이 영화를 사랑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인간의 비애에 잠긴 삶 속에서도 예술이란 꾿꾿하고 아름답게 피어난다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영화는 그렇게 비애에 찬 인간들의 모습을 아름답게 담아내는데 성공합니다.
어쩔수 없다는 참으로 아름답고도 흥미로운 영화였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감각은 아직 녹슬지 않았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되는 영화였습니다. 이병헌 배우의 연기는 정말 돋보였습니다. 그가 아니었다면 이토록 훌륭하게 영화를 이끌 수 있었을까 생각하게 되더군요. 물론 모든 배우들의 연기는 좋았습니다. 그리고 모든 장면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한 번 더 보고 싶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였습니다. 사회에 대한 비판과 예술적 아름다움, 그리고 유머와 재미까지 두루 갖춘 훌륭한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