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의 화제작 소년의 시간을 보았습니다. 한 소년이 친구를 살해하게 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입니다. 드라마는 갑작스레 등장하는 경찰과 놀란 가족들의 모습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수 많은 물음표가 따릅니다. 소년은 범행을 부인하고, 이야기는 진실게임의 측면을 띕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전개 되면서 소년의 범행이 버젓이 드러납니다. 연약한 모습으로 자신을 연기하던 소년은 여성 상담사 앞에서 본격적으로 악하고 타인의 마음을 상처 입히는 모습을 드러냅니다. 무엇이 소년을 괴물로 만든 것일까요. 드라마는 대답하지 않습니다.
만약 선생님이 괴롭힘을 당하던 소년을 발견해서 관심을 주었다면, 어땠을까요. 신체적 활동에 부진하고 그림을 좋아하는 소년을 아버지가 따뜻하게 안아줬다면 어땠을까요. 소년의 친구들이 아이를 받아들여주고 따뜻하게 대해줬으면 어땠을까요. 저는 수 많은 가정을 해야만 했습니다. 만약 누구라도 소년을 제대로 봐주고 따뜻하게 안아주었다면, 소년이 과연 그런 악한으로 성장했을까요. 범죄를 저질렀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았을 겁니다.
드라마는 원테이크 촬영방식으로 감정의 흐름에 집중합니다. 저는 그 집중의 순간이 고통스럽더군요. 그래서 몇번이나 멈추고 다시 보기를 반복했습니다. 인물들의 소리없는 고통과 아우성이 드러나는 듯했기 때문입니다. 드라마는 채찍질하고, 가르치기보다 현실의 고통을 그대로 보여주며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려는 사려깊은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의미있는 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소년에게 관심을 가져주었던 것은 혐오와 폭력을 일삼는 극우 커뮤니티와 인플루언서였죠. 그렇게 앙상한 토대 위에 세겨진 소년의 자아는 부풀대로 부풀어 비대해지기만 했습니다. 멸시받고 소외 받을 수록 자신은 더 인정받고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얻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걸지도 모릅니다. 소년의 시간에서 우리 모두는 죄인입니다. 소년과 소녀를 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비슷한 범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물결 속에서 우리 사회도 그 변화를 막아서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어리고 젊은 남성들의 혐오는 우리 사회에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혐오 살인, 법원폭동사건들이 그 예시가 될 수 있겠죠. 더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변화의 움직임을 시작해야 합니다.
음성으로 듣고 싶으신 분들은 영상을 시청해주세요.
https://youtu.be/QHfPT_y_DYU?si=1yQLpYcxv1afK5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