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박된 생의 허기, 엎어진 개밥그릇이 말하는 것들

스스로의 허기를 걷어찰 수밖에 없는, 목줄에 묶인 존재들의 서글픈 궤적

by 풍운

시골집 마당 한구석, 낡은 말뚝에 매여 평생을 몇 미터의 반경 안에서 살아가는 강아지가 있다. 그 녀석의 유일한 우주는 목줄이 허용하는 딱 그만큼의 넓이다.

그 좁은 우주의 중심에는 늘 투박한 양은 개밥그릇 하나가 놓여 있다. 그릇은 강아지에게 생존의 상징이자, 주인이 다녀갔다는 온기의 흔적이며, 하루 중 가장 달콤한 기다림의 결실이다.

그런데 가끔 마당을 지나다 보면, 그 밥그릇이 흙바닥에 거꾸로 엎어져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누가 일부러 발로 찬 것도 아니다. 주인이 밥을 주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것은 강아지 자신이, 혹은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그 질긴 목줄이 만들어낸 비극이다. 반가운 발소리에 꼬리를 흔들며 달려 나가다 목줄이 팽팽하게 당겨질 때, 혹은 낯선 이의 기척에 몸을 날려 짖어대다 제 발에 걸려버린 결과다.

엎어진 밥그릇 아래로 흩어진 사료들은 흙먼지와 뒤섞여 생의 비루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강아지는 엎어진 그릇 주위를 맴돌며 낑낑거리지만, 이미 엎질러진 허기를 다시 담을 재간은 없다.

가장 절실하게 원했던 것을 자신의 몸부림 때문에 잃어버리고 마는 그 아이러니. 어쩌면 그것은 목줄에 묶인 존재가 감당해야 할 가장 가혹한 형벌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삶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엎어진 개밥그릇과 닮아 있을 때가 많다. 우리는 모두 무언가에 묶여 살아간다. 책임감이라는 이름의 목줄이든, 가난이라는 이름의 말뚝이든, 혹은 스스로가 만들어낸 욕망의 사슬이든 말이다.

우리는 그 좁은 반경 안에서 더 나은 내일을 꿈꾸며 발버둥 치지만, 그 간절한 몸부림이 때로는 우리가 가진 유일한 안식처를 스스로 걷어차 버리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사랑을 지키고 싶어서 내뱉은 모진 말이 사랑을 엎어버리고, 가족의 행복을 위해 밤낮없이 일하다가 정작 가족의 얼굴을 볼 시간조차 잃어버리는 일들.

우리는 저마다의 목줄에 걸려 비틀거리며, 가장 소중한 밥그릇을 흙바닥에 팽개치고는 허망하게 그 주위를 맴도는 서글픈 강아지들인지도 모른다.

엎어진 개밥그릇은 우리에게 묻는다. 너를 묶고 있는 그 줄의 길이는 얼마냐고, 그리고 그 줄에 걸려 네가 놓쳐버린 온기는 또 얼마냐고.

마당 한복판에서 덩그러니 바닥을 보이고 누워 있는 그릇의 텅 빈 속을 보고 있으면, 채워지지 않는 생의 허기가 시린 바람을 타고 가슴 안으로 스며든다.

하지만 그릇이 엎어졌다고 해서 강아지의 생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주인은 다시 돌아와 흙 묻은 그릇을 닦고, 그 안에 다시 따뜻한 밥을 채워 넣을 것이다.

비록 목줄은 여전히 목을 죄어오겠지만, 다시 채워질 그릇을 기다리며 강아지는 또다시 꼬리를 흔들 준비를 한다. 어쩌면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자신의 밥그릇을 엎지르고, 다시 세우고, 또다시 채워가는 그 지루하고도 눈물겨운 반복의 과정일 뿐이다.

우리는 모두 엎어진 밥그릇을 앞에 둔 채 망연자실해본 경험이 있다. 나의 서툰 발짓 때문에, 혹은 나를 붙잡고 있는 삶의 무게 때문에 소중한 것들을 바닥에 쏟아버렸던 그 기억들.

그럴 때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묵묵히 그릇을 다시 세우는 일뿐이다. 비록 흙먼지가 조금 묻었을지라도, 다시 세워진 그릇은 이전보다 조금 더 단단하게 지면을 딛고 설 수 있게 된다.

시골 마당의 엎어진 개밥그릇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결박된 존재가 세상에 내지르는 소리 없는 항변이다.

"나 여기 이렇게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노라"고, "나를 묶고 있는 이 줄이 너무나 팽팽하노라"고 온몸으로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 엎어진 풍경을 비웃을 권리가 없다. 우리 역시 각자의 마당에서, 각자의 목줄에 걸려 제 밥그릇 하나 온전히 지켜내지 못해 쩔쩔매는 서툰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해 저무는 시골 마당, 엎어진 그릇을 뒤로하고 웅크려 잠든 강아지의 뒷모습 위로 달빛이 내린다. 내일 아침이면 다시 밥그릇은 바로 세워질 것이고, 녀석은 어제의 실수를 잊은 채 다시 신나게 꼬리를 흔들 것이다.

우리의 삶도 그렇게 다시 세워진 밥그릇 하나에 기운을 얻어, 오늘을 견디고 내일을 맞이하는 법이다.

비록 목줄은 사라지지 않겠지만, 그 줄이 허용하는 가장 먼 곳까지 발을 내디뎌보는 그 용기만큼은 엎질러지지 않기를.

거꾸로 누운 그릇의 바닥에 고인 햇살 한 줌이, 고단한 우리 모두의 허기를 잠시나마 달래줄 수 있기를 빌어본다.


마당 한구석에 거꾸로 엎어져버린 저 밥그릇은, 우리 모두가 각자의 목줄에 걸려 휘청이면서도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삶의 엄숙한 자화상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