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 복도 센서등, 어둠 속에서 맞이하는 따뜻한 마중

타인의 발걸음에 기어이 응답하는, 저 무심한 배려에 대하여

by 풍운

오래된 빌라 복도는 언제나 죽어 있는 공간처럼 고요하다.

낮 동안은 집집마다 닫힌 문 뒤로 삶의 비명들을 꾹꾹 눌러 담고 있다가, 해가 지고 나서야 하나둘씩 그 치열한 삶의 흔적들을 드러낸다.

그 어두컴컴한 복도 천장에 매달린 낡은 센서등 하나. 그놈은 참으로 묵묵하고도 뜨겁다.

누군가 제 영역으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 단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제 몸을 밝혀 길을 열어준다.

세상의 매정한 눈초리를 피해 겨우 집으로 돌아온 이들의 고단한 발걸음을 말없이 기다려준 유일한 목격자 같아 복도를 걸을 때마다 마음이 눅눅하다.

퇴근길, 무거운 몸을 이끌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 복도 끝에 서면 센서등은 마치 수고했다는 인사를 건네듯 '툭' 소리를 내며 보드라운 불을 켠다.

그 노란빛 아래 드러나는 것은 어지럽게 놓인 이웃들의 정직한 삶이다.

유모차를 놓을 자리가 없어 복도 한구석을 차지한 낡은 세발자전거, 문고리에 위태롭게 걸린 대출 전단지, 그리고 누군가의 현관문 앞에 놓인 노동을 증명하는 흙먼지 묻은 안전화.

센서등은 그 모든 풍경을 있는 그대로의 시선으로 비춘다.

그저 그곳에 그런 삶들이 서로의 어깨를 맞대고 버티고 있다는 사실을 잠시 확인시켜주고는 다시 고요한 어둠 속으로 물러난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그 센서등 같은 존재들일지도 모른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주거나 내 곁으로 다가와 발자국 소리를 낼 때, 비로소 가슴 속의 불을 켜서 누군가의 앞길을 잠시 비춰주는 존재들.

옆집 남자의 지친 어깨 위로 센서등 불빛이 내려앉을 때, 나는 그 남자의 얼굴을 본 적이 없어도 그가 오늘 하루 얼마나 정직하게 땀 흘렸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센서등이 켜지는 그 짧은 몇 초. 그것은 단순히 어둠을 걷어내는 도구가 아니라, 이 낡은 건물 안에서 우리가 여전히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확인하는 가장 다정한 소통의 시간이다.

사람들은 그 불빛이 건네는 배려를 따라 안도하며 제 집의 번호키를 누른다.

불이 꺼지면 다시 시작될 지독한 정적과 외로움 속으로 들어가기 전, 센서등이 빌려준 짧은 온기에 의지해 오늘 하루의 마지막 문장을 갈무리한다.

나는 가끔 일부러 센서등 아래 서서 그 불빛의 끝을 지켜본다.

발자국 소리가 멈추면 금세 꺼져버리는 그 야박하면서도 정직한 배려를 조금 더 붙잡고 싶어서, 일부러 발을 한 번 크게 굴러 본다.

그렇게 다시 깨워낸 불빛은 화려한 백화점의 조명보다 훨씬 더 깊숙하게 내 가슴의 빈터를 비춰준다.

이 낡은 빌라 복도에는 저마다의 무게를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낮은 천장 아래 층층이 쌓인 그들의 피로를 묵묵히 지켜보는 건 오직 저 낡은 전구 하나뿐이다.

옆집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찌개 냄새와 아이의 웃음소리가 공기를 타고 섞일 때, 센서등은 마치 그 모든 삶의 이야기를 다 받아내고 있다는 듯이 고요하게 빛난다.

그건 거창한 구원은 아닐지라도, 어둠 속에서 길을 찾는 이들에게는 그 무엇보다 확실한 위로의 신호다.

누구 하나 눈여겨보지 않는 삶이라도 타인의 발걸음에는 기어이 반응하며 제 소임을 다하는 저 낡은 등기구처럼, 우리도 서로의 존재에 기대어 찰나의 배려를 나누며 살아가고 있다.

복도 끝에서 다시 불이 꺼진다. 내일 다시 누군가의 고단한 발소리가 이 고요를 깨우기 전까지, 센서등은 다시 긴 휴식에 들어갈 것이다.

그 침묵은 차가운 단절이 아니다. 다음에 올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자리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어둠을 견뎌내는 묵직한 기다림이다.

그 희미하고 짧은 불빛 아래서 우리는 서로의 손을 맞잡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서로를 보듬고 힘을 얻는다.

그 불빛이 비추는 낡은 신발장이 실은 우리가 끝까지 사랑하고 지켜내야 할 진짜 삶의 무대라는 것을, 저 무심한 센서등은 이미 알고 있다.

우리는 이 좁고 어두운 복도를 통과하며 매일 조금씩 지치고 상처받지만, 센서등이 켜지는 그 찰나만큼은 내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눈물겹도록 묵직하게 실감한다.

세상은 끊임없이 더 높은 곳, 화려한 빛만을 우러러보라고 강요하지만, 정작 우리 영혼의 허기를 채워주는 건 낮은 곳에서 묵묵히 제 몸을 켜는 투박하고 다정한 저 짧은 불빛이다.

그 빛은 성공한 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오늘도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 이름 없는 우리 모두를 향한 가장 정직한 환대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발자국 소리에 기어이 몸을 펴서 어두운 발등을 비춰주는 그 마음. 우리가 잊고 살았던 사람 사이의 배려는 어쩌면 이 낡은 복도 끝에서 가장 뜨겁게 타오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센서등은 오늘도 약속처럼 제 자리를 지키며, 어둠을 뚫고 돌아오는 우리들의 지친 등을 가만히 밀어주고 있다.

때로는 그 불빛이 너무 빨리 꺼져버려 다시 발을 세게 굴러야 할 때도 있지만, 그 수고로움조차 실은 내가 살아있음을 이 공간이 다정하게 응답해준다는 증거다.

우리는 이 정직한 불빛 아래서 각자의 방문을 열고 들어갈 힘을 얻는다. 세상의 매정한 소음이 잦아든 복도, 그곳에 고인 찰나의 배려가 지친 우리의 밤을 가장 깊게 안아주고 있다.


결국 배려하는 삶이란 저 무뚝뚝한 센서등처럼, 타인의 고단한 발소리에 기어이 반응하며 잠시 어두운 발등을 비춰주는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