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퇴근길, 길가에서 마주친 가장 달콤한 생존의 맛
운전을 하다가 신호 대기에 걸려 잠시 창밖을 보거나, 골목 어귀에서 담배 한 대 피우려 멈춰 섰을 때 유독 시선을 잡아끄는 풍경이 있다.
화려한 신축 빌딩 숲 뒤편, 기어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낡은 고물상.
누군가 내다 버린 욕망의 찌꺼기들이 거대한 산을 이루는 그곳에는, 가장 날 것의 사람 냄새가 공기 중에 눅눅하게 배어 있다.
어스름한 저녁, 그 좁은 입구로 폐지를 가득 실은 리어카들이 비명 같은 소리를 내며 하나둘 모여든다.
굽은 허리로 리어카를 밀고 들어오는 노인들의 거친 숨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오늘 하루 내가 짊어졌던 고민의 무게가 얼마나 가벼운 것이었나 생각하게 된다.
무게를 달고 손에 쥔 몇 장의 지폐. 그건 단순히 물건을 살 수 있는 종이가 아니라, 오늘 하루도 내가 꺾이지 않고 길 위를 버텼다는 가장 정직한 삶의 영수증이다.
그 영수증을 주머니 깊숙이 찔러 넣은 뒤에야 노인들은 팽팽했던 긴장의 끈을 아주 조금, 느슨하게 풀어놓는다.
그리고 약속이라도 한 듯 먼지 자욱한 사무실 구석, 낡은 정수기 옆으로 옹기종기 모여든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노란색 믹스커피 봉지를 뜯는 그들의 손길을 가만히 지켜본다.
검은 때가 눌러붙은 손톱과 겨울바람에 갈라진 손마디로 조심스레 종이컵을 감싸 쥐는 모습.
그 컵 속에는 세상에서 가장 달콤하고 묵직한 정(情)이 담겨 있다.
이건 우리가 카페 창가에 앉아 우아하게 들이켜는 커피와는 태생부터가 다르다.
온종일 사람들의 무심한 시선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견뎌낸 뒤, 지친 몸속으로 강제로 주입하는 일종의 '생존의 마중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종이컵 위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은 노인들의 깊게 파인 주름 사이사이를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지나간다.
그들은 서로에게 거창한 안부를 묻지 않는다. "오늘 좀 모았어?"라는 투박한 말 한마디, 그리고 이어지는 짧은 헛기침이면 서로의 고단함을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그 좁은 공간에 흐르는 것은 세련된 위로보다 훨씬 묵직하고 진한 사람들의 체온이다.
우리는 따뜻한 공간 안에서 비싼 커피를 마시면서도 늘 무언가에 쫓기듯 마음이 허허롭다.
곁에 있는 사람에게 마음을 열기보다 스마트폰 액정 너머의 세상에 집착하며 타인의 시선을 애써 외면하며 산다.
하지만 고물상 구석의 저 노인들은 종이컵 하나에 담긴 그 작은 정을 통해 서로가 여기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확인한다.
그 흙먼지 묻은 설탕물은 내일 다시 리어카를 끌고 차가운 아스팔트 위로 나설 수 있게 만드는 작지만 지독하게 질긴 동력이 된다.
진짜 체온은 결핍의 끝자락에서 맞잡은 종이컵의 온기로 서로를 데우는 찰나에 완성된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그 낮은 곳에서 서로의 온도가 되어주는 순간, 그 투박한 정이야말로 우리가 잃어버린 생의 가장 뜨거운 실체다.
도시의 매끄러운 질감 아래 숨겨진 결핍의 밑바닥을 더듬어보라.
진짜 위안은 화려한 결제창이 아니라 리어카가 머물다 간 자리의 달큰한 믹스커피 단내 속에 스며 있다.
그 노란 봉지 속 설탕과 프림의 맛은 세상의 냉대를 함께 견뎌낸 이들만이 말없이 공유할 수 있는 투박한 위로의 방식이다.
종이컵 바닥에 눌어붙은 설탕 한 알까지 혀끝으로 소중하게 훑어내며, 그들은 잠시나마 세상의 모진 바람을 잊는다.
그 짧은 휴식이 끝나면 그들은 다시 장갑을 고쳐 끼고 어둠이 짙게 깔린 골목으로 발을 내디딘다.
리어카 바퀴가 자갈을 짓이기는 소리가 정막한 공기를 깨우며 멀어져 갈 때, 나는 비로소 삶의 가장 정직한 뒷모습을 본다.
고물상을 나서는 노인들의 뒷모습 위로 다시 어둠이 낮게 깔리지만, 그들의 뱃속에 고인 설탕물의 정(情)은 그 어떤 가식적인 위로보다 더 길고 질기게 그들의 밤을 지켜낼 것이다.
누군가는 그 풍경을 가난의 잔상이라 말하겠지만, 내가 본 것은 꺾이지 않는 생의 의지였고 서로의 시린 가슴을 데워주는 가장 뜨거운 인간의 온도였다.
오늘 나의 마음을 데워준 건 과연 무엇이었을까. 기계적으로 결제한 무색무취의 소비인가, 아니면 스치듯 마주친 타인의 고단한 생에서 길어 올린 그 짧고 진한 정(情)인가.
리어카가 지나간 자리에 남은 믹스커피의 단내는 오늘 하루를 팔아치운 우리 모두의 시린 하루를 조용히 덮어주고 사라진다.
결국 우리를 버티게 하는 건 화려한 결제창의 숫자가 아니라, 서로의 고단함을 녹여내는 저 싸구려 커피 한 잔의 달큰한 연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