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먼지 하나 허락하지 않는 삶이 놓치고 있는 것들
현관을 나서기 전, 거울 앞에 서서 신발 끝에 묻은 사소한 자국을 닦아낸다.
새하얀 운동화 위에 묻은 아주 작은 흙먼지도 용납하지 못하는 그 마음은, 어쩌면 내 삶이 타인에게 조금의 흠결도 없이 매끄럽게 보이길 바라는 강박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누구나 반짝이는 새 신발을 신고 세상의 무대에 오르고 싶어 하지만, 정작 그 신발이 닿아야 할 곳은 먼지 날리는 길바닥이라는 사실을 애써 외면한다.
이토록 신발의 청결함에 집착하며 사는 이유가 무엇일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건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의 고단함을 부정하고 싶은 안간힘에 가깝다. 삶의 비릿한 냄새가 내 발끝에 묻지 않기를, 타인이 내 발자국에서 삶의 흔적을 읽어내지 못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스스로를 결벽으로 내몬다.
하지만 얼룩 하나 없는 신발은 사실 그 주인이 아무 데도 가지 않았거나, 그저 남들이 닦아놓은 매끄러운 길 위로만 안주하며 걸어왔다는 무기력한 증거일 뿐이다.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는 것은,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았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신발에 묻은 얼룩은 세상과 부딪히며 만들어낸 정직한 흔적이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빗길을 달렸던 기억, 더 나은 내일을 위해 거친 흙탕물을 건너왔던 그 치열한 기록들이 사실은 존재의 깊이를 증명한다.
깨끗하게 닦인 구두는 세련된 이미지를 줄 수는 있어도, 그 사람이 헤쳐온 삶의 파도를 말해주지는 못한다. 사람들은 세상이 정해놓은 '깔끔한 기준'에 길들여져, 정작 스스로가 밟아온 소중한 시간의 증거들을 부끄러운 오염이라 생각하며 지워내느라 급급하다.
우리는 어쩌면 자신의 삶을 가꾸는 것이 아니라, 남들에게 보여줄 전시용 신발을 닦는 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언제쯤 신발의 낡음과 얼룩을 당당하게 긍정할 수 있을까.
조금은 해지고 빛이 바랜 신발이야말로, 내가 매 순간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며 살아냈다는 가장 솔직한 기록이다.
번쩍이는 새 상품 같은 삶을 연기하느라 발끝을 사리며 걷는 대신, 차라리 온몸으로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자신만의 보폭으로 걸어가는 태도가 더 고귀하다.
남들의 시선이라는 잣대로 내 발밑을 검열하는 행위는 결국 나라는 존재의 생동감을 스스로 거세하는 일일 뿐이다. 삶은 진열장 속의 정물이 아니라, 끊임없이 먼지를 일으키며 나아가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현관으로 돌아와 낡은 운동화를 벗어둔다.
거기엔 오늘 내가 마주한 사람들의 온기와, 내가 견뎌낸 시간의 얼룩들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신발 밑창에 낀 작은 돌멩이조차 내가 오늘 밟았던 대지의 조각이며, 신발 뒷축에 묻은 진흙은 내가 포기하지 않고 걸어온 증거다.
이런 것들은 닦아내야 할 오염이 아니라, 내가 오늘 하루를 충실히 통과했다는 가장 선명한 삶의 무늬다. 인공적인 백색 뒤로 숨는 나약함을 버릴 때, 비로소 길 위의 진실이 발바닥을 타고 온몸으로 전해진다.
더러워진 신발을 보며 눈살을 찌푸리는 대신, 그 낡음 속에 깃든 자신의 수고로움을 다독여야 한다. 광택을 잃어가는 가죽과 올이 풀린 신발 끈이야말로, 우리가 이 거친 세상을 어떻게 통과해왔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정직한 자서전과 같다.
완벽함이라는 환상을 걷어내면, 비로소 먼지 묻은 신발을 신고도 당당히 고개를 들 수 있는 자유가 생긴다.
"내 신발에 묻은 저 흙먼지는, 오늘 내가 어떤 길을 건너왔다고 말해주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