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살냄새보다 세탁제 향기가 익숙해진 도시
출근길 만원 지하철에 몸을 실으면, 각기 다른 사람들의 살냄새 대신 코를 찌르는 강렬한 인공 향료의 냄새가 먼저 다가온다.
금방 세탁기에서 꺼낸 듯한 비누 향, 혹은 꽃밭을 통째로 옮겨놓은 듯한 섬유유연제 냄새들이 뒤섞여 좁은 칸 안을 가득 채운다.
사람들은 저마다 삶의 흔적을 감추기 위해, 화학적으로 설계된 향기 뒤로 숨어버린다. 땀 냄새나 눅눅한 생활의 냄새가 타인에게 들키는 것을 마치 커다란 결례나 수치인 양 여기며 사는 것이다.
이토록 집요하게 인위적인 향기에 매달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건 나라는 존재의 본질을 지우고 사회가 선호하는 '깔끔한 이미지'를 덧씌우려는 안간힘에 가깝다.
사람들은 고유한 체취가 사라진 자리에 대량 생산된 향기를 채워 넣으며 안도감을 얻는다. 하지만 그 향기가 짙어질수록, 정작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고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짐작할 수 있는 인간적인 단서들은 점점 증발해버린다.
향기는 타인과의 '안전한 거리'를 제공하는 보이지 않는 벽이다.
누군가의 살냄새를 맡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가장 은밀하고 본능적인 영역으로 들어가는 일이지만, 인공적인 향기는 그 진입을 사전에 차단한다.
향기를 통해 자신을 멋지게 포장하지만, 동시에 타인과 진심으로 연결될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감각을 스스로 마비시키고 있다. 향긋한 냄새가 진동하는 공간 안에서 정작 사람 냄새를 그리워하게 되는 것은 이런 지독한 역설 때문이다.
서로의 체취를 맡을 수 없을 만큼 멀어진 거리는, 결국 마음의 거리마저 인공적인 선분으로 갈라놓는다.
언제쯤 자신의 솔직한 체취를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치열하게 하루를 살아낸 끝에 배어 나오는 땀 냄새는, 그 어떤 값비싼 향수보다 정직한 삶의 영수증이다. 그것은 오늘 하루 내가 얼마나 뜨겁게 대지를 밟았는지, 얼마나 절박하게 누군가를 만났는지를 증명하는 가장 솔직한 기록이다.
꽃향기가 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존재가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님에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세탁하고 박박 문질러서 개성 없는 무미건조한 향기로 통일하려 애쓴다.
이런 강박은 결국 자신만의 고유한 색깔을 잃어버리고 시스템이 찍어낸 공산품처럼 살아가게 만든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단순히 냄새가 아니라, 날 것 그대로의 나를 드러낼 수 있는 용기다.
결국 도시의 향기란, 서로의 민낯을 마주하기 두려워하는 이들이 내건 세련된 항복 선언일지도 모른다.
화학적으로 조합된 향료가 코끝을 마비시킬 때, 우리는 정작 흙냄새, 비 냄새, 그리고 곁에 있는 사람의 따뜻한 온기가 섞인 진짜 냄새를 잊어버린다.
진짜 삶은 향긋한 라벤더 향이 아니라, 때로는 맵고, 때로는 쿰쿰하며, 때로는 땀방울 맺힌 고단한 냄새 속에서 피어나는 법이다.
지하철 역사를 빠져나오며 내 옷깃에 코를 대본다.
나 역시 오늘 아침,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정성스럽게 인공의 향기를 뿌리고 나오지 않았던가. 그 향기가 서서히 옅어지고 내 안의 날 것 그대로인 생활의 냄새가 올라올 때, 나는 비로소 가면을 벗은 기분이 든다.
인공적인 향긋함 뒤에 숨는 비겁함을 버릴 때, 우리는 비로소 서로의 진짜 냄새를 맡으며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가식적인 향기를 걷어내고 내 몸이 내뱉는 정직한 숨결을 마주해야 할 시간이다.
"내가 오늘 옷자락에 묻혀온 이 향기는, 나의 진짜 모습을 얼마나 가려주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