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가 멈출 때까지의 유예, 0.5평의 고립된 침묵

밀폐된 무관심, 쇠문 안에서 타인을 지워버리는 우리들의 기술

by 풍운

현대 도시에서 가장 밀도 높은 고독이 발생하는 장소는 의외로 아주 좁은 공간이다.

수십 층 높이의 빌딩을 오르내리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사람들은 타인과 어깨를 맞댈 만큼 가까이 서 있지만, 정작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는 일은 거의 없다.

문이 닫히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그 기묘한 적막 속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시선을 둘 곳을 찾아 필사적으로 헤맨다.

누구는 시시각각 변하는 층수 표시기를 뚫어지게 응시하고, 누구는 이미 다 아는 자기 구두 코를 내려다보며, 또 다른 이는 꺼진 스마트폰 화면을 무의미하게 만지작거린다.

이 0.5평 남짓한 금속 상자는 연결을 갈구하면서도 정작 마주침은 두려워하는 우리 시대의 이중적인 민낯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전시장이다.

시선을 이 좁은 공간의 구석으로 돌려보면, 우리가 얼마나 타인을 잠재적인 위협이나 불편함으로 정의하고 있는지 드러난다.

엘리베이터를 타려는 누군가를 위해 열림 버튼을 누르기보다, 혼자만의 공간을 지키기 위해 닫힘 버튼을 연타하는 손가락의 다급함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우연히 눈이라도 마주칠까 봐 고개를 빳빳하게 들거나 아예 정수리만 보여주는 그 방어적인 태도는, 타인을 인격체가 아닌 내 휴식을 방해하는 소음으로 간주하는 비정함에서 비롯된다.

가장 세련된 기술이 집약된 이동 수단 안에서, 우리는 정작 이웃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인사인 목례조차 잊어버린 채 각자의 섬으로 침잠한다.

결국 이 수직의 공간은 타인과 섞이지 않으려는 의지가 충돌하는 차가운 진공 상태의 방이 되어버렸다.

문이 닫히는 찰나의 순간에 우리가 발휘하는 그 지독한 무관심은, 사실 나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 타인의 존재 자체를 지워버리는 아주 조용한 폭력이다.

가까이 밀착된 타인의 미세한 기척조차 기계의 마찰음보다 못하게 여기며, 우리는 스스로를 세상으로부터 완벽하게 차단시킨다.

이 밀폐된 무관심 속에서 안전함을 느낀다는 사실이야말로, 우리가 얼마나 타인이라는 온기를 잃어버린 채 메마른 존재로 변해가고 있는지를 증명하는 서글픈 증거다.

층수가 올라갈수록 숫자에 매몰된 우리의 시선은 더욱 고정되고, 좁은 공간 안의 공기는 마치 굳어버린 시멘트처럼 딱딱하게 굳어간다.

함께 갇힌 이들의 피로와 고뇌에는 단 일 초의 관심도 주지 않으면서, 내가 내려야 할 층의 불빛에만 온 신경을 곤두세우는 그 기이한 집착은 우리 사회가 가진 지독한 자기중심성을 닮아 있다.

서로를 투명 인간 취급하며 얻은 그 매끄러운 평온은, 정작 우리가 상실한 것이 예의가 아니라 사람이 사람에게 건네는 최소한의 온정임을 말해준다.

우리는 이 좁은 공간에서조차 나만의 영토를 지키기 위해 타인의 숨통을 조이는 무언의 압박을 가한다.

먼저 탄 사람이 구석을 차지하고 나중에 탄 사람이 입구에 서는 그 단순한 질서 속에서도, 서로의 살갗이 닿지 않으려 몸을 움츠리는 그 결벽에 가까운 거부감은 현대인이 가진 관계의 질환을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사방이 막힌 금속 방 안에서 우리는 철저하게 혼자가 되기를 선택하고, 그 대가로 얻은 적막을 자유라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 적막은 자유가 아니라, 타인과 공명할 수 있는 모든 감각이 퇴화해버린 자들의 무덤과도 같다.

목적지에 도착해 쇠문이 열리는 순간, 우리는 누구보다 빠르게 그 좁은 감옥을 탈출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하지만 그 짧은 탈출 뒤에 남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누군가와 연결될 수 있었던 작은 가능성마저 스스로 잘라냈다는 씁쓸한 고독의 찌꺼기뿐이다.

오늘 하루, 나는 몇 번이나 닫힘 버튼을 누르며 내 마음의 문까지 굳게 걸어 잠갔을까 가늠해 본다.

속도와 편의에만 삶을 맡길수록, 정작 소중히 간직해야 할 삶의 본질들은 닫히는 쇠문 사이에 끼어 흔적도 없이 짓눌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타인의 존재를 소음으로 지워버린 채 오르는 수직의 질주. 그 끝에서 마주한 것은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투명한 고립 속에 갇힌 나 자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