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 뒤의 골목길 제설, 모두가 하나되는 마음

경계를 허물며 터낸 길 위에 흐르는 공동체의 온기

by 풍운

밤사이 세상이 하얀 침묵에 잠겼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은 아름다운 풍경이기 이전에, 누군가의 발걸음을 묶어버리는 차갑고 거대한 단절이다.

동이 트기도 전, 골목 어귀에서 서걱거리는 투박한 빗자루 소리가 들려온다.

잠기운을 털어내기도 전 밖으로 나온 누군가가 자신의 집 앞뿐만 아니라, 이웃의 대문 앞까지 묵묵히 눈을 치우고 있다.

제설은 단순히 눈을 치우는 노동이 아니다. 그것은 '나'라는 사적인 공간에서 '우리'라는 공적인 공간으로 조심스럽게 통로를 내는 의식이다.

대문 앞의 눈만 치우고 집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려도 누구 하나 비난할 수 없는 세상이지만, 먼저 나온 이의 빗자루질은 결코 내 집 마당의 경계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가 터낸 길은 누군가의 출근길이 되고, 아이들의 등굣길이 되며, 거동이 불편한 노인의 안전한 보행로가 된다.

우리는 이 무명의 수고를 보며 보이지 않는 공동체의 존재를 실감한다.

누구의 집 앞인지, 누가 이 길을 가장 먼저 지나갈지 따지지 않는 그 무심한 다정함은, 자본과 효율의 계산으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다.

나의 편안함보다 타인의 미끄러짐을 먼저 걱정하는 마음, 그 마음들이 모여 쌓인 눈을 밀어낼 때 비로소 차가운 골목길에는 사람이 살 만한 온기가 흐르기 시작한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이런 '먼저 길을 터주는 사람들'에 의해 가까스로 유지되고 있다.

내가 오늘 걷는 이 길이 평탄한 이유는 나보다 앞서 고난의 눈더미를 치워준 무수한 손길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회라는 거대한 골목에서 누군가는 법과 제도를 넘어선 윤리적 책임을 다하며, 타인이 다치지 않도록 자신의 시간을 기꺼이 내어놓는다.

그들은 보상을 바라지 않으며, 그저 길이 열리고 소통이 시작되는 그 당연한 순리를 사랑할 뿐이다.

폭설은 우리에게 단절의 공포와 연결의 소중함을 동시에 가르쳐준다.

나만 안전하다고 해서 나의 삶이 온전해질 수 없음을, 내 앞마당만 깨끗하다고 해서 세상으로 나가는 문이 열리지 않음을 눈 덮인 골목은 웅변한다.

결국 공동체란, 서로의 집 앞을 가로막은 눈을 대신 치워주며 맺는 무언의 신뢰 관계인 셈이다.

지금도 골목 어딘가에 남은 검게 그을린 연탄재나 모래 주머니가 뭉클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것이 누군가의 선의가 머물다 간 가장 정직한 흔적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름조차 남기지 않고 길을 내어준 그 노고 덕분에, 우리는 비로소 넘어지지 않고 오늘이라는 시간 속으로 안전하게 걸어 들어갈 수 있다.

길을 터는 행위는 단순히 얼음을 깨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삶으로 향하는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일이다.

오늘 아침, 누군가 치워놓은 길을 따라 걷고 있다면 잠시 멈춰 서서 생각해보아야 한다.

나 또한 누군가를 위해 빗자루를 들 준비가 되어 있는지, 나의 경계 밖으로 다정한 첫발을 내디딜 용기가 있는지 말이다.


누구의 몫인지 묻지 않고 묵묵히 쓸어낸 그 길 위에서, 우리는 비로소 각자의 고립된 성에서 걸어 나와 서로의 안부를 묻는 진정한 이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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