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구두 밑창, 가장 낮은 곳에 새겨진 세월의 무늬

나를 밀어 올리기 위해 깎여 나간 실존의 세월

by 풍운

현관 앞에 놓인 오래된 구두 한 켤레를 뒤집어본다.

언젠가 매끄럽고 단단한 광택을 뽐내며 새로운 세상으로 나를 안내했을 그 바닥은, 이제 본래의 무늬를 모두 잃어버린 채 군데군데 패이고 깎여 처절한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구두의 밑창은 우리 몸에서 세상의 거친 표면과 가장 직접적으로 충돌하는 비극적인 경계다.

그것은 걷는다는 행위가 사실은 끊임없이 나를 소모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임을 묵묵히 증명하고 있다.

사람들은 구두의 앞코나 매끈한 가죽의 결을 닦으며 자신의 품위를 유지하려 애쓴다.

하지만 한 사람의 생애가 지닌 진정한 무게와 정직한 서사는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저 낮은 밑바닥에 새겨져 있다.

왼쪽이 유난히 닳아 있는 것은 치우친 삶의 고집을 보여주고, 뒤꿈치가 뭉툭해진 것은 세상의 속도를 따라잡으려 필사적으로 발을 굴렀던 어느 오후의 급박한 심장을 대변한다.

밑창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주인이 걸어온 비탈진 길과 평탄했던 길을 기록한 단 한 권의 지문이다.

우리는 구두 밑창이 얇아지는 만큼 세상의 풍파에 노련해졌다고 믿는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밑창이 닳아 없어진다는 것은 세상의 비정한 질감과 나의 살점 사이를 가로막던 최소한의 방어막이 사라지고 있다는 뜻이다.

밑바닥이 얇아질수록 우리는 아스팔트의 차가운 냉기를 더 생생하게 느끼게 되고, 작은 자갈 하나에도 발바닥이 저릿한 통증을 겪는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어쩌면 이처럼 세상의 거칠함을 더욱 노골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위태로운 노출의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해진 밑창을 끌고 다시 문밖을 나서는 이유는, 마모된 그 자리가 바로 생을 지탱하는 접지면이기 때문이다.

매끄러운 새 구두는 얼어붙은 빙판길 위에서 속절없이 미끄러지지만, 주인의 걸음걸이에 맞춰 비뚤어지고 투박해진 낡은 밑창은 오히려 지면을 더 끈질기게 움켜쥔다.

상처 입고 닳아버린 흔적이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를 다시 일어서게 하고, 넘어지지 않게 붙들어 매는 삶의 억척스러운 뿌리가 되는 것이다.

낡은 구두 밑창은 성공이라는 화려한 수식어 뒤에 숨겨진 노동의 본질을 고발한다.

누군가를 먹여 살리기 위해 수만 번 길 위를 서성였던 시간, 자존심을 굽히며 무거운 가방을 들고 계단을 오르내렸던 그 고단함이 고무 바닥에 깊은 골을 만들었다.

세상은 그를 '성취한 자'로 기억할지 모르나, 이 낮은 밑바닥은 그를 '견뎌낸 자'로 영원히 기록한다.

이제 닳아버린 밑창을 수선소에 맡기거나 혹은 조용히 보내주어야 할 시간이 왔다.

비록 이 구두는 사라지겠지만, 그 밑창이 세상의 거친 마찰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지켜냈던 주인의 발걸음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그 마모된 두께만큼 세상을 깊이 읽어냈고, 그 깎여 나간 부피만큼 생의 단단한 근육을 얻었기 때문이다.


가장 낮은 곳에서 제 몸을 갈아 세상의 비정함을 감당해낸 저 밑창의 흔적은, 화려한 성취보다 정직하게 인간의 존엄한 분투를 증명하는 비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