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받은 숨결이 먹어 치운 저주받은 생애
반려동물 수제 간식 가게의 진열대는 세심한 보살핌으로 가득하다. '무항생제', '사람이 먹어도 되는 등급' 같은 문구들이 붙은 간식들은 정갈하게 포장되어 주인의 선택을 기다린다. 내 곁의 작은 생명에게 더 좋은 것을 먹이고 싶은 마음은 더없이 순수하고 애틋하다. 우리는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며 고기 간식을 받아먹는 모습에서 안도감을 느끼고, 고양이가 맛있게 먹는 소리에서 기쁨을 확인한다. 하지만 이 온화한 풍경의 바로 뒷면에는, 그 간식의 재료가 되기 위해 기계처럼 태어나 물건처럼 해체된 다른 생명들의 처참한 흔적이 숨어 있다.
우리는 '가족'이라 부르는 생명에게는 한없이 자비롭지만, 그들의 식탁에 오르는 '고기'가 된 생명들에게는 지독할 만큼 무심하다. 수제 간식의 예쁜 모양을 만들기 위해 공장식 축산이라는 거대한 감옥에서 평생 햇빛 한 줌 보지 못하고 죽어간 소와 돼지, 닭들의 고통은 철저히 생략된다. 누군가의 반려동물에게는 최고의 보양식이지만, 그 보양식이 되기 위해 이름도 없이 번호로만 불리다 사라진 생명들에게 이곳은 지옥보다 더 가혹한 공간이다. 애틋한 염려가 깊어질수록,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소모되는 다른 생명들의 무게는 점점 가벼워지는 모순이 발생한다.
이러한 모순은 우리가 생명을 바라보는 이중적인 시선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어떤 동물의 생명은 수십만 원짜리 수제 케이크로 기념되지만, 어떤 동물의 생명은 그 케이크의 부속품이 되기 위해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이 결정된다. 인간의 선택에 의해 '사랑받는 존재'와 '먹히는 존재'로 갈리는 이 잔인한 경계선 위에서, 생명의 본질은 사라지고 오직 인간 중심적인 가치만이 남는다. 우리가 반려동물의 털을 빗겨주며 속삭이는 따스한 손길 속에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 울부짖던 다른 생명의 비명이 아주 얇은 종이 한 장 차이로 겹쳐져 있는 셈이다.
결국 화려한 수제 간식은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진실을 예쁜 포장지로 감싸 안은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생명을 아끼는 마음조차 자본의 논리에 따라 골라낸 결과일 때, 그 마음은 진정한 생명 존중이 아닌 또 다른 형태의 이기심으로 변질된다. 접시 위에 놓인 말린 고기 한 조각에서 피비린내 나는 공장의 소음과 차가운 칼날의 감각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그 단절된 시선이야말로 우리가 생명을 대하는 태도가 얼마나 치우쳐 있고 비정한지를 증명하는 가장 슬픈 증거다.
모든 생명이 소중하다는 말은 때때로 공허하게 울린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수많은 선택이 다른 생명에게는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되고 있다면, 그 행위는 과연 순수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내 곁의 작은 숨결을 소중히 여기는 만큼,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 식탁을 위해 희생된 수많은 숨결에 대해서도 우리는 한 번쯤 멈춰 서서 고민해 보아야 한다. 우리가 베푸는 헌신적인 애착의 그림자가 얼마나 길고 어두운지를 깨닫는 순간, 비로소 생명을 향한 우리의 시선은 조금 더 투명하고 준엄해질 수 있을 것이다.
반려동물을 위해 준비한 정성스러운 수제 간식은, 사실 다른 생명의 고통을 지워버린 자리에 세워진 너무나도 편파적인 위선의 기념비가 아닐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