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빵의 추억과 그 속에 섞인 도심의 매연과 먼지

달콤한 위로의 틈새로 스며든 잿빛 공기

by 풍운

찬 바람이 목덜미를 파고드는 퇴근길, 길모퉁이에서 피어오르는 하얀 김은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마법 같은 힘이 있다. 투박한 무쇠 틀에서 갓 구워져 나온 붕어빵은 단돈 몇 천 원으로 살 수 있는 가장 따뜻하고 정겨운 겨울의 전령사다. 종이봉투 밖으로 배어 나오는 고소한 팥 냄새와 손끝으로 전해지는 온기는 하루의 피로를 녹여주는 작은 위로가 된다. 우리는 붕어빵을 베어 물며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고, 팍팍한 도시 삶 속에서도 아직 이런 소박한 낭만이 남아 있음에 안도한다. 하지만 그 달콤한 위로의 공간은, 사실 도심에서 가장 탁하고 비정한 공기가 머무는 곳이기도 하다.

붕어빵 노점은 대개 매연이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대로변이나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지하철역 입구에 자리를 잡는다. 붕어가 노릇하게 익어가는 동안, 그 곁을 지나는 수많은 자동차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먼지와 중금속 섞인 매연을 뿜어낸다. 노점의 주인은 그 자욱한 잿빛 공기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반죽을 붓고 팥을 채운다. 우리가 추억이라 부르며 입안 가득 담는 그 고소함 속에는, 사실 도시가 뱉어낸 오염된 숨결이 켜켜이 스며들어 있다. 낭만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그 따스함은, 역설적으로 도시에서 가장 열악하고 위태로운 환경에서 잉태된다.

우리는 붕어빵 가격이 올랐다며 투덜거리지만, 그 가격 속에 포함되지 않은 노동의 고통과 환경의 가혹함은 보지 못한다. 매연 가득한 길거리에서 온종일 서서 연기를 마시며 구워낸 붕어빵은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누군가의 생존을 위한 처절한 사투의 결과물이다. 붕어빵의 바삭한 껍질 위로 내려앉은 것은 설탕 가루만이 아니라, 대도시의 욕망이 배설한 시커먼 먼지들이다. 추억을 소비하는 이들은 그 먼지를 보지 못하거나 혹은 기꺼이 외면한다. 깨끗하고 정제된 백화점의 식품관이 아닌, 매연 섞인 길거리의 낭만을 선택하는 대가는 결국 우리 모두의 폐부 깊숙이 쌓여가는 잿빛 침전물이다.

더 비극적인 것은 이 따스한 추억마저 이제는 도시의 질서라는 이름 아래 점점 밀려나고 있다는 점이다. 위생과 미관을 이유로 노점들은 사라져가고, 그 자리는 대형 프랜차이즈의 매끄러운 유리창이 채운다. 매연 속에서도 꿋꿋이 피어오르던 인간적인 온기는 이제 세련된 자본의 논리에 밀려 갈 곳을 잃는다. 붕어빵 봉투를 들고 집으로 향하는 길, 코끝에 스치는 것은 여전히 팥의 달콤함이지만 등 뒤에서 느껴지는 것은 차가운 자동차의 경적과 서늘한 도심의 소음뿐이다.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은 어쩌면 붕어빵 그 자체가 아니라, 매연 속에서도 서로의 온기를 나누던 시절의 기억일지도 모른다.

도시의 화려함이 짙어질수록 그 이면의 공기는 더욱 탁해진다. 우리는 깨끗한 실내에서 인공적인 온기를 누리지만, 가끔은 매연 가득한 길가로 나와 붕어빵 한 봉지를 찾는다. 그 짧은 순간의 위안을 위해 우리는 기꺼이 독한 연기를 들이마시고 먼지 섞인 추억을 씹어 삼킨다. 붕어빵의 둥근 모양 속에 갇힌 것은 달콤한 팥소가 아니라, 비정한 도시의 공기를 견뎌내며 살아가는 우리네의 고단하고도 씁쓸한 초상이다.


우리가 추억이라 부르며 베어 문 그 고소함은, 사실 도시가 뱉어낸 잿빛 그을음을 거름 삼아 피어올린 가장 서글프고도 따뜻한 역설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