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화려한 실적과 마모된 근로자의 일상

화려한 성장 지표 아래 가려진 마른 고혈

by 풍운

기업의 연간 실적 발표회장은 승리의 함성과 장밋빛 전망으로 가득하다. 무대 위 대형 화면에 띄워진 그래프는 오른쪽 위를 향해 거침없이 뻗어 나가고, 단상 위에 오른 경영진은 '혁신'과 '성장'이라는 단어를 섞어가며 우리 회사가 거둔 찬란한 성과를 찬양한다. 주주들은 환호하며 박수를 치고, 경제 매체들은 앞다투어 이 기업이 써 내려간 새로운 성공 신화를 대서특필한다. 하지만 그 눈부신 숫자의 잔치가 벌어지는 동안, 화면 뒤편의 어두운 복도에는 그 숫자를 채우기 위해 자신의 시간과 건강, 그리고 일상의 소소한 행복까지 통째로 갈아 넣은 이름 없는 이들의 메마른 숨소리가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경영진이 '우리 모두가 함께 일궈낸 기적'이라며 희망적인 메시지를 던질 때, 정작 그 기적을 몸으로 버텨낸 근로자들은 사무실의 차가운 형광등 아래에서 마른 고혈을 짜내고 있다. 성장의 속도가 가팔라질수록 근로자들의 퇴근 시간은 저 멀리 밀려나고, 기업의 이익이 층층이 쌓여갈수록 그들의 눈가에는 씻어내지 못한 피로의 그늘이 깊게 드리워진다. 기업이 말하는 '혁신'은 때때로 더 적은 인원으로 더 많은 결과물을 쥐어짜야 하는 가혹한 채찍질이 되며, '도전'이라는 구호 아래 근로자들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업무의 무게를 묵묵히 감내해야 한다. 우리가 우러러보는 화려한 실적 지표는 사실 가장 낮은 곳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킨 이들의 마모된 일상을 거름 삼아 세워진 위태로운 탑이다.

더 비극적인 사실은, 기업의 가치가 드높아질수록 그 가치를 실제로 만든 사람들의 존재감은 역설적으로 희미해진다는 점이다. 회사는 거대한 기계가 되어 정교하게 돌아가고, 근로자는 그 기계를 멈추지 않게 하는 소모품으로 전락한다. 성장의 달콤한 열매는 대개 위층의 소수에게 집중되지만, 그 성장을 위해 치러야 했던 고통의 청구서는 오롯이 아래층 사람들의 몫으로 남겨진다. 밤늦게까지 꺼지지 않는 사무실의 불빛은 기업에게는 '열정'의 상징일지 모르나, 근로자에게는 가족과의 저녁 식사를 포기하고 아이의 커가는 순간을 놓치며 지불하는 값비싼 인생의 통행료다. 기업의 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지만, 그 기업을 지탱하는 이들의 삶의 질은 점점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친다.

우리는 기업의 성공 신화에 열광하며 그들이 내놓은 화려한 비전에 기꺼이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그 비전이 누구의 무너진 일상 위에 설계되었는지는 묻지 않는다. 경영자의 매끄러운 미사여구는 근로자들의 지친 한숨을 덮어버리는 커다란 확성기가 되고, 성취를 축하하며 터뜨리는 샴페인 소리는 과로로 쓰러져가는 이들의 신음을 지워버리는 소음이 된다. 진정한 성장이란 대체 무엇인가. 누군가의 삶을 무참히 파괴하고 얻어낸 숫자상의 이익이 과연 인류의 진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결국 기업의 화려한 겉모습은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편리한 허상일지도 모른다. 그 허상을 유지하기 위해 누군가는 자신의 생명력을 조금씩 깎아내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들어간다. 기업의 성공을 증명하는 차가운 숫자 뒤에는, 따뜻한 온기가 사라진 근로자들의 메마른 가슴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가 그 화려한 성취에 취해 박수를 치는 동안에도, 누군가의 존엄한 일상은 기업이라는 거대한 바퀴에 깔려 흔적도 없이 으스러지고 있다.


경영진의 희망찬 연설문은, 사실 마른 고혈을 짜내며 버텨온 근로자들의 지친 숨결을 화려한 수식어로 덮어버린 비정한 덮개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