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의 가면, 기도가 아닌 거래가 오가는 욕망의 전당

가장 거룩한 침묵 속에서 작성하는 지독한 사리사욕의 계약서

by 풍운

정적만이 흐르는 성당의 장의자에 앉아, 혹은 화려한 조명이 비치는 교회의 예배당에서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고결한 표정을 짓는다.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모으는 그 행위는 세상의 번뇌를 내려놓고 오로지 하늘의 뜻을 묻는 것처럼 보인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빛이 어깨에 머물고 파이프 오르간의 선율이 공간을 채울 때, 우리의 경건함은 절정에 달한다. 하지만 그 침묵과 찬양의 외피를 한 꺼풀만 벗겨내면, 그곳은 세상 그 어느 시장바닥보다 치열하고 지독한 '욕망의 거래소'로 변질된다. 성소(聖所)라는 이름의 그늘 아래서 우리는 신과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탐욕을 정당화해 줄 거대한 영적 권위와 협상을 벌이고 있다.

물론 진실한 마음으로 길을 찾는 이들이 여전히 존재함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신을 믿지 않는 자들보다 더욱 부패하고 타락한 종교인들의 오물 같은 행태가 도처에 널려 있다. 신의 사랑을 설파하는 입술은 뒤돌아서면 세상의 그 누구보다 돈을 밝히는 파렴치한 탐욕을 내뿜으며, 거룩함을 가장한 성소의 뒷방에서는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추악한 범죄들이 예사로 자행된다. 언제부턴가 성소는 영혼의 안식을 구하는 곳이 아니라, 인맥을 쌓고 정보를 거래하며 새로운 사업의 실마리를 찾는 기회주의적인 도박장으로 전락해버렸다. 경건한 기도의 소리 사이로 은밀한 권력의 야합이 오가고, 세속의 성공을 위해 신을 수단으로 이용하는 지독한 비즈니스가 십자가 아래서 거룩하게 세탁된다.

우리는 무언가를 비우러 간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더 큰 것을 채워 오기 위해 신과 은밀한 거래를 시도한다. 헌금함에 넣는 지폐 몇 장과 십일조라는 명목의 봉투는 신의 마음을 사기 위한 계약금이 되고, 밤새 올리는 간절한 통성기도는 내 자식의 합격과 내 사업의 번창을 담보로 하는 집요한 요구서가 된다. 가장 거룩해야 할 성소가 사실은 자신의 사리사욕을 가장 정당하게 배설하는 분뇨의 현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주옵소서"라는 짧은 간구 뒤에 숨겨진 것은 영혼의 구원이 아니라, 세속에서 남들보다 앞서나가고 싶은 우리들의 조급한 갈증뿐이다. 이토록 파렴치한 욕망을 쏟아내면서도 스스로 구원받을 것이라 믿는 그 오만함은, 인간의 탈을 쓰고는 차마 할 수 없는 기만이다.

진정한 신앙이나 성찰은 '나'를 지우고 타인을 향해 자리를 내어주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들의 기도는 '나'라는 자아를 비대하게 키우는 작업에 가깝다. 이웃의 고통과 사회의 부조리에는 눈 감으면서 내 자산의 가치 하락에는 통곡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서는 침묵하면서 내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서는 신의 바짓가랑이를 붙잡는다. 사랑과 희생으로 포장된 종교적 장소에 가득 찬 것은, 결국 세속에서 다 채우지 못한 지독한 이기심의 잔해들뿐이다. 우리는 십자가 아래서조차 타인의 불행을 딛고 일어서려는 비겁한 경쟁을 멈추지 않는다.

만약 신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그가 가장 참기 힘든 것은 불신자가 아니라 '거래'를 하러 온 신자들의 위선일 것이다. 비움을 연기하며 채움을 갈망하는 그 두꺼운 낯짝들이 성당과 교회를 가득 메울 때, 그곳은 이미 구원의 통로가 아니라 욕망의 쓰레기 매립지가 된다. 신은 우리의 기도 제목이 아니라, 기도를 마친 뒤 일어서는 우리들의 뒷모습에 남겨진 욕망의 무게를 달아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성소에서 내뱉는 간절한 신음은 진정 영혼의 울림인가, 아니면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싶은 결핍의 비명인가.

우리는 이제 거창한 중언부언을 멈추고, 자신이 들고 온 그 탐욕스러운 거래 명세서를 스스로 찢어버려야 한다. 장소가 주는 경건함에 취해 자신의 이기심을 '간절함'이라는 이름으로 미화하지 마라. 비우지 못한 자의 기도는 공허한 소음일 뿐이며, 버리지 못한 자의 성찰은 허영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진정한 성소는 화려한 성전이 아니라, 자신의 추악한 욕망을 정직하게 마주하고 그것을 덜어내려 애쓰는 우리들의 마음속에 세워져야 한다. 신의 이름을 빌려 추악한 욕망을 채우려 했던 그 비겁한 시간을 참회하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는 인간의 탈을 쓴 괴물이 아닌 본래의 자아를 마주할 수 있다.


가장 성스러운 곳에서 우리가 마주한 것은 신이었는가, 아니면 신의 탈을 쓰고 구걸하는 우리 자신의 추악한 욕망이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