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된 자존감을 보충하려는 애처로운 증명서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눈을 사로잡는 것은 신발장에 놓인 운동화 옆면의 선명한 로고다. 날카로운 갈고리 모양이든, 세 줄의 평행선이든, 혹은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인장이든, 그것들은 이제 단순한 디자인을 넘어 우리의 위치를 규정하는 계급장이 되었다. 우리는 더 희귀하고 더 비싼 로고를 발등에 얹기 위해 줄을 서고, 리셀 시장의 숫자에 일희일비한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냉혹한 진실이 있다. 신발의 가격이 우리의 보폭을 넓혀줄 수는 있어도, 그 신발을 신고 걷는 우리 자신의 인격까지 고결하게 만들어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운동화 로고는 현대판 부적과 같다.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정글에서 우리가 도태되지 않았음을, 혹은 남들보다 한 발 앞서 나가고 있음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선택한 가장 쉽고도 비싼 방법이다. 내면의 단단한 자존감을 쌓는 일은 고통스럽고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로고가 박힌 신발을 카드로 긁는 일은 찰나의 쾌락을 보장한다. 우리는 그렇게 텅 빈 내면을 화려한 가죽으로 덧칠하며, 타인의 시선이라는 거울 앞에 자신을 세운다. 운동화 옆면에 새겨진 그 화려한 문양들은 사실, 스스로를 증명할 방법이 오직 소비뿐인 우리들의 애처로운 항변이자 결핍의 증명서일 뿐이다.
자본은 우리의 이러한 불안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한정판이라는 이름으로 희소성을 조작하고, 유명인들의 발끝을 빌려 소유욕을 자극한다. 그 로고를 소유하는 순간 마치 특별한 집단에 소속된 것 같은 착각을 심어주지만, 그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수백만 원짜리 신발을 신고 걷는 길 위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불안하고, 여전히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괴로워한다. 로고는 결코 마음의 허기를 채워주지 못한다. 오히려 더 비싸고 더 희귀한 로고를 향한 갈증만을 키울 뿐이며, 우리는 그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자신의 노동과 시간을 기꺼이 자본의 제단에 바친다.
진정한 위엄은 발끝이 아니라 삶의 태도에서 나온다. 낡고 해진 신발을 신고도 당당히 자신의 길을 걷는 이의 발걸음에는, 그 어떤 명품 로고로도 흉내 낼 수 없는 삶의 무게가 실려 있다. 반면, 수백만 원짜리 운동화를 신었음에도 타인을 배려할 줄 모르고 자신의 이익만을 쫓는 우리의 발걸음은 경박하기 그지없다. 신발은 땅을 딛는 도구일 뿐이지, 타인의 머리 위에 서기 위한 발판이 아니다. 로고의 화려함에 눈이 멀어 정작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누구와 함께 걷고 있는지를 잊어버린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비극적인 소외다.
우리는 이제 운동화 옆면의 로고를 떼어내고 그 아래 숨겨진 자신의 발을 정직하게 응시해야 한다. 우리가 딛고 있는 이 지면이 로고의 힘으로 버티는 가공의 무대인지, 아니면 나의 의지로 버티는 진짜 현실인지를 구분해야 한다. 브랜드가 주는 가짜 자존감에 취해 있는 동안, 우리의 진짜 자아는 낡은 운동화 속의 발처럼 짓무르고 있을지도 본다. 소유가 존재를 대신할 수 없다는 명징한 사실을 깨닫는 순간, 비로소 우리는 로고의 노예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보행자가 될 수 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의 발끝을 보라고 유혹하겠지만, 우리는 시선을 들어 우리가 걷고 있는 풍경과 우리 옆의 사람을 보아야 한다. 비싼 로고가 없어도 우리의 삶은 그 자체로 충분히 고귀하며, 우리가 내딛는 모든 진실한 보폭은 그 어떤 명품보다 아름다운 궤적을 남긴다. 자본이 찍어낸 낙인에 우리의 가치를 가두지 마라. 우리의 가치는 우리가 신은 신발의 가격표가 아니라, 그 신발을 신고 우리가 행한 다정한 실천들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화려한 로고 뒤에 숨어 자존감을 구걸하기보다, 낡은 신발을 신고도 묵묵히 제 길을 가는 이의 단단한 발바닥이야말로 이 시대가 잃어버린 인간다움의 본령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