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by 풍운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정말로 단 한 번만이라도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무엇을 가장 먼저 바꿀 것인지에 대해. 시간은 앞으로만 흐른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은 자꾸 뒤를 돌아봅니다. 이미 끝난 장면을 다시 고쳐보듯 다른 선택을 상상합니다.

돌아가고 싶은 그때는 특별하거나 극적인 순간이 아닙니다. 병실에서 들었던 문장도 아니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던 자리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보다 훨씬 이전, 아무 일도 없던 평범한 날입니다. 서로가 아직 당연했던 시절, 오늘이 내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이라 믿던 때입니다.

만약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저는 말을 조금 덜 아꼈을 것입니다. 괜히 체면을 지키느라 삼켰던 문장들을 그대로 꺼냈을 것입니다. “고맙다”는 말과 “미안하다”는 말, 그리고 그 사이 어딘가에 있었던 솔직한 고백을 미루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말들이 관계를 바꾸지는 못했을지라도, 제 마음은 조금 덜 무거웠을 것 같습니다.

또 다른 장면이 떠오릅니다. 저녁 식탁에서 아무렇지 않게 휴대전화를 보던 순간, 피곤하다는 이유로 대화를 짧게 끊어버리던 밤입니다.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저는 화면을 내려놓고 조금 더 오래 마주 앉았을 것입니다. 별 의미 없어 보이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었을 것입니다. 나중에 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사실은 그때밖에 할 수 없는 일이었다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이상하게도 끝난 뒤에야 사소한 장면을 떠올립니다. 말끝의 억양, 웃음의 길이, 잠깐 멈췄던 눈빛까지도. 그때는 스쳐 지나갔던 순간들이 시간이 흐른 뒤에는 깊이 남습니다. 돌아갈 수 있다면 저는 그 장면을 더 천천히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서두르지 않고, 미루지 않고, 당연하게 여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정말로 돌아간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달라질지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의 마음을 가진 채로 과거로 가는 것이 아니라, 그 시절의 나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때의 저는 여전히 바빴고, 여전히 서툴렀으며, 여전히 내일이 있다고 믿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또 비슷한 선택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후회의 방향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일은, 그때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을 다르게 사는 일과 더 가까웠습니다. 그때 하지 못한 말을 지금은 미루지 않으려 합니다. 그때 놓쳤던 시선을 지금은 조금 더 오래 붙잡으려 합니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지만 태도는 바꿀 수 있습니다. 내일이 당연하다고 믿지 않는 것, 곁에 있는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사소한 순간을 흘려보내지 않는 것.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면 그때를 통해 배운 것으로 오늘을 채우는 일입니다.

가끔은 여전히 상상합니다. 그날의 문을 다시 열고 들어가 아무 일도 모르는 얼굴로 당신을 마주하는 장면을. 그리고 그 장면 속의 나에게 조용히 말해주고 싶습니다. 조금만 더 솔직하라고, 조금만 덜 미루라고, 지금이 전부일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상상은 거기까지입니다. 문은 열리지 않고,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습니다. 남은 것은 오늘뿐입니다. 이미 지나간 장면을 고치는 대신, 지금의 문장을 다르게 써 내려가는 일.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저를 현재에 붙잡아 둡니다. 과거는 수정할 수 없지만 지금은 여전히 선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조금 덜 망설이기로 합니다. 말해야 할 문장은 미루지 않고, 안아야 할 사람은 바로 안고, 들어야 할 이야기는 끝까지 듣기로 합니다.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지금을 놓치지 않으려 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바랐던 것은 과거로의 여행이 아니라, 현재를 제대로 살아보는 용기였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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