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남긴 온기

by 풍운

당신이 떠난 뒤에도 집 안에는 온기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히 느껴지는 것이었습니다. 의자에 걸쳐진 외투, 반쯤 읽다 접어둔 책, 아무렇게나 놓인 컵 하나가 아직도 당신의 체온을 품고 있는 듯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금세 식어버릴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상하게도 그 온기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그 온기가 저를 더 아프게 했습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데, 실제로는 닿을 수 없다는 사실이 선명해졌기 때문입니다. 함께 앉았던 자리, 나란히 걸었던 복도, 조용히 숨을 고르던 밤의 공기까지도 여전히 당신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 온기를 느끼는 순간마다 저는 다시 그 시간 속으로 돌아가는 듯했습니다.

사람들은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이 정리될거라고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당신이 남긴 온기입니다. 그것은 물리적인 체온이 아니라, 함께 나눈 시선과 말투, 그리고 아무 말 없이도 이해되던 순간들이 쌓여 만들어진 감각입니다.

어떤 날은 그 온기가 아주 미세하게 느껴집니다. 바람이 스치듯 지나가고, 그 자리에 조용히 머뭅니다. 저는 그 감각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잠시 멈춰 서서 받아들입니다. 여전히 제 안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 슬프면서도 다행스럽기 때문입니다. 완전히 차가워지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당신이 남긴 온기는 물건 속에도, 기억 속에도 스며 있습니다. 식탁에 마주 앉았던 장면, 무심히 건넸던 한마디, 괜히 웃음이 터지던 순간들이 마음속에서 천천히 되살아납니다. 그 기억들은 더 이상 생생한 현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과거가 된 것도 아닙니다. 제 하루 어딘가에 조용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저는 한때 이 온기를 지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계속 붙들고 있으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까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알게 되었습니다. 온기를 지운다고 해서 상실이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오히려 그 온기를 인정하는 편이 더 솔직한 태도라는 것을.

당신이 남긴 온기는 저를 멈추게 하지 않습니다. 대신 조금 더 신중하게 만듭니다. 누군가와 마주 앉을 때, 그 사람의 눈을 더 오래 바라보게 합니다. 말해야 할 문장은 미루지 않으려 하고, 사소한 순간도 쉽게 넘기지 않으려 합니다. 언젠가 이 시간 역시 누군가에게 온기로 남을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어떤 밤에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다가, 문득 당신의 숨결이 떠오릅니다. 실제로는 아무것도 없지만, 기억 속에서는 여전히 따뜻합니다. 그 온기를 떠올리면 가슴 한쪽이 조용히 저립니다. 그러나 그 감정은 더 이상 저를 무너뜨리지 않습니다. 아픔과 동시에 감사함이 함께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온기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형태를 바꿀 뿐입니다. 처음에는 분명하고 뜨거웠지만, 이제는 은은하게 남아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제 안에서 여전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것이 사랑이 남긴 가장 오래가는 흔적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이제 그 온기를 밀어내지 않습니다. 사라지기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다만 그 감각을 안은 채로 하루를 살아갑니다. 완전히 잊지 못한다는 사실이 때로는 아프지만, 동시에 그것이 제가 진심으로 사랑했었다는 증거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남긴 온기는 아직 제 안에 있습니다. 차갑게 식지 않은 채, 조용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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