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사람의 속도

by 풍운

누군가 떠난 뒤에야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남겨진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속도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은 이전과 다르지 않게 움직입니다. 출근길의 사람들은 바쁘게 걸어가고, 신호등은 정해진 순서대로 바뀌며, 하루는 어김없이 저녁을 향해 흘러갑니다. 겉으로 보기에 시간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흘러가지만, 제 안의 시계는 어딘가 맞지 않는 느낌을 줍니다.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걷는 듯 보이는데, 저만 살짝 비켜 서 있는 기분이 듭니다.

아침은 변함없이 찾아옵니다. 알람이 울리고, 씻고, 옷을 입고, 해야 할 일들을 처리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에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에서는 작은 지연이 생깁니다. 말을 꺼내기까지, 메시지에 답을 보내기까지, 문을 열고 나가기까지 예전보다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티가 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 간격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저는 그 차이를 느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시간이 약이라고 말합니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닙니다. 다만 그 시간이 모두에게 같은 속도로 흐르지는 않습니다. 어떤 날은 하루가 비교적 수월하게 지나가고, 어떤 날은 유난히 길게 느껴집니다. 같은 스무네 시간이지만 체감하는 무게는 다릅니다. 아무렇지 않게 길을 걷다가도, 함께 지나던 장소를 마주치는 순간 발걸음이 느려집니다. 특별한 일이 벌어지지 않아도 기억은 예고 없이 떠오릅니다.

처음에는 가능한 한 빨리 이전의 생활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멈춰 있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주변은 계속 움직이고 있는데 저만 제자리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더 바쁘게 움직이기도 했습니다. 약속을 늘리고, 일을 더 맡고, 혼자 생각할 시간을 줄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속도를 높일수록 마음 한쪽에서 어긋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몸은 앞으로 나아가는데, 감정은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남겨진 사람에게는 정해진 기준이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누군가는 비교적 빨리 일상을 정리하고, 누군가는 오랜 시간 머뭅니다. 어느 쪽이 더 강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각자가 겪은 관계의 깊이와 시간의 밀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게는 몇 달이면 충분할 수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몇 년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비교하는 순간, 회복은 오히려 더 멀어집니다.

속도가 느려지면서 보이는 것들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무심히 지나쳤던 장면이 오래 남습니다. 사람의 말투, 표정, 잠깐의 침묵이 쉽게 잊히지 않습니다. 당연하게 여기던 하루가 사실은 쉽게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상실은 많은 것을 빼앗아 가지만, 감각까지 무디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더 조심스럽게 바라보게 합니다.

어떤 날은 생각보다 괜찮습니다. 평소처럼 웃고, 대화를 나누고, 일도 무리 없이 해냅니다. 그러다가도 이유 없이 마음이 가라앉는 날이 있습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문득 떠오를 뿐입니다. 그럴 때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왜 아직 이 감정이 남아 있는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됩니다. 감정에는 마감일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편이 더 솔직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남겨진 사람의 속도는 직선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듯하다가도 다시 멈칫하는 날이 있습니다. 다시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또 무거워집니다. 그 반복은 실패가 아닙니다. 회복은 단정하게 정리되지 않습니다. 오르내림을 겪으며 서서히 자리를 바꿉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예전과 같은 속도로 완전히 돌아가지는 않는다는 점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대신 다른 리듬이 생깁니다. 말을 조금 더 신중하게 하고, 선택을 조금 더 오래 고민합니다. 사람과 마주할 때 한 번 더 생각하고, 해야 할 말은 미루지 않으려 합니다. 언젠가 어떤 순간이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남겨진 사람은 결국 걷습니다. 빠르게 달리지도 않고, 완전히 멈춰 서 있지도 않은 채 자신에게 허락된 보폭으로 하루를 이어 갑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일상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멈춤과 다시 시작이 반복됩니다. 다른 사람은 모를지라도, 스스로는 압니다.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덜 힘들었다는 사실을.

속도를 되찾는다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잃어버린 것을 그대로 복구하는 일은 없습니다. 대신 새로운 속도를 만들어 갑니다. 이전과는 다른 간격과 다른 호흡으로 시간을 건너갑니다. 그 속도는 설명하지 않아도 됩니다. 남겨진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남을 따라잡는 일이 아니라, 자기 방식대로 이어 가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걷고 있습니다. 조금 느린 날이면 그만큼의 보폭으로, 비교적 괜찮은 날이면 그에 맞는 걸음으로 시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언젠가 이 속도 또한 또 다른 모습으로 바뀔지 모릅니다. 다만 지금은, 이 리듬 그대로 조용히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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