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이라는 이름의 달콤한 가스라이팅

하나를 위해 왔다가 둘을 짊어지고 나가는 비겁한 퇴근길

by 풍운

편의점 진열대의 차가운 조명 아래에 서면, 우리는 너무나 무력하게 주관을 잃어버린다.

원래 내 갈증을 달래려 했던 건 투명한 병에 담긴 맑은 생수 한 병이었으나, 어느새 내 손에는 '1+1'이라는 빨간 스티커가 훈장처럼 붙은 인공적인 색감의 음료 두 병이 들려 있다.

하나 가격에 두 개를 가져간다는 그 얄팍하고 명쾌한 이득이, 방금 전까지 내가 가졌던 '순수한 목마름'이라는 본질을 단숨에 뭉개버린 것이다.

우리는 1+1 상품을 장바구니에 담으며 스스로 대단히 합리적이고 영리한 선택을 했다고 믿는다.

하지만 가만히 그 이면을 되새김질해보면, 그것은 합리가 아니라 거대한 자본의 시스템이 던진 미끼에 낚인 비겁한 굴복에 가깝다.

유통기한이 임박하여 폐기 직전에 놓였거나, 창고의 무게를 덜어내야 하는 그들의 절박한 사정을, 우리는 '득템'이라는 매혹적인 포장지로 감싸 안은 채 내 삶 속으로 꾸역꾸역 밀어 넣는다.

결국 내 손에 쥐어진 '덤'이라 불리는 나머지 하나는 내가 원한 주체적 선택이 아니라, 그들이 세련되게 떠넘긴 '처리'일 뿐이다.

누군가의 재고가 나의 소유로 둔갑하는 순간, 우리는 마치 시스템 위에 서 있는 포식자라도 된 양 의기양양하게 편의점 문을 나선다.

하지만 그 봉투 안에는 나의 의지가 아닌, 타인의 계산이 더 묵직하게 담겨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닫지 못한다. 내일의 갈증까지 미리 저당 잡힌 채, 우리는 불필요한 무게를 짊어지고 집으로 향한다.

이것은 비단 편의점 음료수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네 관계와 삶을 지탱하는 방식 또한 이 비릿한 구조와 지독하게 닮아 있다.

온전히 나 자신이라는 존재, 그 '하나'가 가진 고유한 무게를 견디지 못해 우리는 세상이 좋다고 떠들어대는 수많은 '덤'들을 내 삶의 여백에 끼워 넣는다.

마치 주말 저녁, 조용히 책 한 권을 읽으며 나를 돌보고 싶은 진심 대신, SNS에 올릴 사진 한 장을 건지기 위해 기어코 유명한 핫플레이스를 찾아가 '분위기'를 덤으로 얻으려 애쓰는 것과 같다.

혹은 진심으로 궁금하지도 않은 타인의 소식을 뒤적이며, 나의 공허함을 가리기 위해 영혼 없는 소통을 보험처럼 삶에 추가하며 '나는 고립되지 않았다'는 가짜 안도감을 사는 행위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남들이 다 하니까, 혹은 지금 챙겨두지 않으면 손해라는 불안함에 쫓겨 쟁여둔 그 수많은 부가적인 가치들이, 정작 내 삶의 본질을 얼마나 무겁고 탁하게 만들고 있는지는 돌아보지 않는다.

우리는 정작 '나'라는 본체는 잃어버린 채, 덤으로 얻은 껍데기들을 관리하고 전시하느라 정작 중요한 갈증은 잊어버리고 만다.

우리는 언제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당당해질 수 있을까. 두 개를 쥐어야만 비로소 이득을 보았다고 믿게 만드는 이 얄팍한 상술 속에서, 우리는 자기 결정권이라는 가장 고귀한 권리를 스스로 무디게 만들고 있다.

덤을 하나 더 챙겼다는 찰나의 안도감이 사실은 내 존엄한 주체성을 단돈 몇 천 원에 팔아넘긴 영수증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매번 비겁하게 외면하며 집으로 향한다.

비닐봉지 안에서 힘없이 덜렁거리며 부딪히는 저 무거운 '나머지 하나'를 멍하니 내려다본다.

어쩌면 우리는 비워내는 법을 잊은 채, 채워지지 않는 허기를 가짜 풍요로 덮으려 애쓰는 가련한 포식자들일지도 모른다.

시스템이 설계한 친절한 함정 안에서, 나는 오늘 나의 갈증보다 무거운 '덤'의 무게를 지탱하며 위태로운 걸음을 옮긴다.


"내 갈증보다 앞선 저 덤의 무게는, 오늘 나에게 무엇을 남겼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