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감각한 구두 굽 아래 으깨진, 어느 가장의 처절한 독백
번화가 대로변이나 지하철 입구는 언제나 형형색색의 종이들로 뒤덮여 있다.
누군가에게는 한 장이라도 더 전해져야 할 절박한 기회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손에 닿는 순간 버려야 할 거추장스러운 짐이 되는 전단지들이다.
사람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 종이 뭉치를 건네는 손길을 외면하거나, 받은 지 몇 걸음도 되지 않아 길바닥에 미련 없이 던져버린다.
바람에 이리저리 쓸리다 비에 젖고 신발 밑창에 짓이겨진 그 종이들은, 현대인이 타인의 노고를 얼마나 가볍게 취급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적나라한 증거물이다.
그 얇은 종이 한 장에 담긴 누군가의 땀방울과 생존의 무게는, 바삐 움직이는 보행자들의 구두 굽 아래에서 너무나 쉽게 으깨지고 만다.
시선을 낮추어 이 현상을 깊이 파고들어 보면, 전단지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는 타인의 노동을 소모품으로 여기는 오만함이 짙게 깔려 있다.
종이를 건네는 노인의 구부정한 허리나, 추위 속에서 장갑도 끼지 못한 채 손을 내미는 절박함은 안중에도 없다.
내 시야를 어지럽히는 불편함으로만 전단지를 정의하는 순간, 그 안에 담긴 내용은 물론이고 그것을 만든 이의 마음까지도 '쓰레기'라는 이름으로 박제된다.
사람과 사람이 마주치지만 결코 서로를 보지 않는 이 비정한 거리에서, 우리는 정작 인간으로서 나누어야 할 최소한의 측은지심을 보도블록 틈새로 흘려보내고 있다.
결국 길바닥의 전단지는 홍보의 수단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공감 능력이 얼마나 바닥에 떨어져 있는지를 측정하는 서글픈 척도가 되어버렸다.
이런 '시각적 외면'의 논리는 우리 삶의 전반에 깊숙이 침투해 있다.
나의 쾌적함에 방해가 된다면 그것이 어떤 사정인지 들여다보기도 전에 고개를 돌려버리는 것이 이 시대의 차가운 미덕이 되어버렸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전단지의 뒷면을 우연히 보게 되었을 때, 거기 적힌 '개업'이나 '임대'라는 단어들이 누군가에게는 전 재산과 맞바꾼 마지막 승부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는다.
타인의 불행이나 간절함을 그저 피해야 할 번거로움으로 인식하는 모습은, 정작 우리가 상실한 것이 도시의 청결함이 아니라 '타인의 삶에 대한 상상력'임을 말해준다.
가장 세련된 거리를 걷는다고 자부하지만, 정작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낮고 힘없는 존재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따뜻한 시선이다.
짓이겨진 전단지 조각들이 구두 밑창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모습은, 우리가 외면했던 타인의 고통이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 삶에 흔적을 남긴다는 상징과 같다.
쉽게 타인의 기대를 저버리고 그들의 정성을 훼손하면서 얻은 그 매끄러운 보행의 속도가 모여, 결국 우리를 더욱 시린 소외의 광장으로 내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신만의 목적지를 향해 질주하느라 정작 발밑에서 신음하는 타인의 생존을 인지하지 못하고, 정성 없이 스쳐 지나간 인연들은 금세 칙칙한 먼지처럼 쌓여버린다.
더러워진 길을 비난하며 눈을 가릴 때, 우리 자신의 영혼도 누군가에게는 한 번 짓밟히고 버려질 얇은 종이처럼 가벼워지고 있다는 서늘한 자각이 든다.
이 무심한 발걸음의 궤적을 돌이켜보며, 바닥에 떨어진 타인의 마음을 한 번쯤 눈여겨볼 수 있는 여유를 회복해야 한다.
내 보폭이 얼마나 오만하게 타인의 삶을 뭉개고 있었는지 스스로에게 통렬하게 물어야 할 때다.
비정하게 무시된 간절함 위에서 누리는 평화는 결코 온전할 수 없으며, 타인을 도구로 여기고 얻은 편의는 끝내 마른 흙먼지 같은 허망함만을 남길 뿐이다.
편리한 외면 뒤에 숨겨진 인간 소외의 비린내를 직시할 때, 비로소 고개를 숙여 짓밟힌 전단지 너머에 있는 진짜 사람의 얼굴을 발견할 용기가 생겨난다.
길을 건너며 다시 한번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오늘 하루, 나는 몇 번이나 타인의 절박함을 '오염'이라 부르며 짓밟고 지나왔을까 가늠해 본다.
속도와 편의에 삶의 가치를 맡길수록, 정작 소중히 간직해야 할 삶의 본질들은 빗물에 젖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된 종이 뭉치처럼 처참하게 무너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무심코 짓밟고 지난 그 종이 한 장이, 실은 누군가가 세상에 내민 마지막 구조 신호였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