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살까지 문맹이었다.
취학 전, 여느 아이들처럼 꾸준히 한글을 교육받았다. 짐작도 가지 않는 아주 어릴 때부터 벽마다 한글(알파벳도 있었다)과 그림이 그려진 포스터가 붙여져 있던 기억이 난다. 자음 ‘ㄱ’의 발음 ‘기역’이 쓰여 있거나, 기역이 들어간 단어와 그림이 함께 있던 거 같다. 오히려 선명하게 기억나는 건 알파벳 ‘A’다. ‘Apple’이 쓰여 있는 공간에 빨간 사과가 그려져 있었다. 그때 애플이라고 발음했지만, 당연히 apple이라는 단어를 외우진 못했다. 매일매일 보는 글자인데도 한글이든 알파벳이든 정확히 외우는 단어는 없었다.
부모님과 차에 타면 항상 간판 이름 공부를 했다. 거의 일정한 길을 오가다 보니 간판에 적힌 글자도 항상 그대로였다. 엄마가 “저 간판 읽을 수 있어?”라고 물으면, “응. 장미의 상실.”이라고 대답했다. 간판에 띄어쓰기가 제대로 돼 있지 않아 [장미 의상실]을 장미의 상실로 기억한 것이다. 전에 한 글자씩 배웠던 탓이다. “순서대로 장 - , 미 - , 의 - , 상 - , 실.” 이렇게 한 글자 한 글자 알려주면 내 마음대로 간판 모양과 언어를 외우는 것이다.
그리고 쓰기는 할 수 없었다. 읽는 것도 아니었다. 반복되는 간판을 그림처럼 외우는 거뿐이었다. 그래도 몇 가지 글자는 기억했는데 그것도 모양이 특이해서 연상이 되는 경우였다. 어릴 적만 해도 간판 등 페인트로 글자를 써놓은 곳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익’자와 ‘의’자를 구별하기 힘든 글자도 있었다. 그런 특이한 경우는 기억하기 쉬웠다.
나도 어린이집, 유치원을 다녔었고 한때는 한글 과외도 받았었다. 그리고 일상에서 한글 교육이 거의 매일같이 이루어졌다. 그래도 한글을 제대로 읽거나 쓰지 못했다.
초등학교를 입학하고서 학급 아이들 모두 큼지막한 이름표를 달고 있었다. 모두 이름표를 보고 친구의 이름을 불렀다. 그중에 ‘인향’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 이름이 매우 예뻐서 함박웃음을 지으며 “인형아! 넌 이름이 인형이네?”라고 말한 기억이 난다. 글자를 터득하지 못했는데 ‘인형’이라는 글자는 많이 보고 들었지만, ‘인향’이라는 글자는 처음 보았다. 비슷하게 생겼으니 인형이라고 생각했다.
자신 있게 친구의 이름을 부르며 순간 뿌듯함을 느꼈지만, 돌아오는 인향이의 대답에 혼란스러웠다. 살면서 ‘인향’을 들어 본 적 없었다. 세상에 없는 단어가 생겨난 것이다. 그래서 기분 나쁜 체하며 자신의 이름은 인향이라고 말하는 친구에게 계속 인형이라고 우겼다. 인향이는 내가 자신을 놀리는 줄 알았다가 오해가 풀렸던 거 같다. 아마 내가 제대로 읽지 못한 거라고 알아채서 이해하고 넘어간 건지, 나의 죽여주는 사교술로 모면했던 건지 더 나쁜 기억은 없다.
유치원 때부터 받아쓰기 시간만 되면 몹시 곤란했다. 한 문장도 제대로 쓴 적이 없었다. 받아쓰기 문제는 간단했을 거다. 가령, ‘나비가 난다’ 이런 식의 간단한 문장 혹은 어려운 단어 하나 수준이었을 거다. 받침이 있는 단어는 무조건 틀렸던 거 같다. 그리고 아무리 쉬운 문장이어도 반은 맞고, 반은 틀리기 일쑤였다. 유치원 때부터 취학 후에도 받아쓰기 시간은 계속됐다. 받아쓰기만 하면 학급에서 가장 모자란 아이가 됐다. 그래서 받아쓰기하는 시간은 끔찍한 스트레스였다.
나는 한글을 어떻게 터득했을까?"
사실 한글을 터득한 방법이나 기억은 없다. 그냥 자연스럽게 글자를 익히게 된 거다. 1, 2학년 때만 해도 문맹이었던 내가 3학년 때는 학급문집 편집 일을 맡아했다. 편집할 수준 정도면 학급에서 글을 잘 쓰는 사람이었기에 글자를 잘 안 틀리는 건 기본이었다. 그 시기가 비약적인 한글 터득기인 셈이다.
내가 갑자기 머리가 좋아지거나 특급 과외를 받아서 한글을 터득한 게 아니었다. “그냥” 글자를 터득할 나이가 돼서 글자를 읽고, 쓰게 된 거다. 똑똑해서도, 머리를 많이 써서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인간 지능이었기에 마침 문자를 터득할 “때”에 맞춰 한글이 쏙쏙 들어왔던 거다.
실제로 7세까지 우뇌가 발달하기 때문에 아이가 취학 전에 글자를 터득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우뇌 성장에 좋지 않다. 아이의 두뇌발달 시기에 맞춰 7세 이후 글자를 가르치는 것이 좋고, 효과적이다.
3학년 학급문집에 편집뿐만 아니라 최다 기고자였다. 더불어 독후감도 많이 썼다. 그때 스스로 ‘글에 재능이 있는 거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그 나이쯤에 글자를 잘 터득한다는 과학적인 내용을 몰랐으니까 말이다.
열 살 무렵부터 글을 많이 읽고, 많이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 12살 때 시인이 되겠다고 마음먹었으니, 글에 재능이 있진 않았어도 재주 부리고 싶었던 건 사실이다.
만약, 7세 이전에 한글을 터득했다면 어땠을까. 유아 사교육에 혈안인 부모님이어서 한글은 물론 영어까지 익혔다면 지금 어떨까? 글도 잘 쓰고, 영어영문도 잘할까?
어떤 가정을 해도 답은 모른다. 그러나 나는 또래보다 비교적 늦게 글자를 터득해서 한글 멍청이가 되진 않았다. 오히려 미진했던 글자공부가 잘되니까 자신감이 붙어서 더 흥미롭게, 더 열심히 했다.
PS. 초등 3학년부터 영어 과목은 필수로 배우는데, 겨우 한글 맞춤법을 터득해 나가는 시기에 영어라는 다른 글자와 문법을 터득해야 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취학 전 받아쓰기 시간처럼 곤욕스러운 과목이었다. 그 스트레스가 여태까지 잠재해 있는지, 영어는 아몰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