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워하지 말라.

일기는 일기장에

by 즐거운 사라

주변에 마흔을 넘은 사람들을 보면 하나둘씩 병이 나기 시작한다. 가까운 글자가 안 보이고, 흰머리가 많아져 거멓게 염색한다. 관절 마디마다 아프고 손상된다. 치과에 가면 잇몸이 약해진 탓이니 뾰족한 치료법도 없다. 특이한 병이 아니라 나이 들어 몸이 낡아 버린 탓이다.


이처럼 육체는 성장이 멈춤과 동시에 대개 20대 초반부터 노화가 시작된다. 특히 마흔 전후로 육체는 건강 회복이 쉽지 않고, 끊임없이 병들어 간다. 다만, 의학의 발달로 삶을 연장한다.


농경사회에서는 평균 수명이 짧아 마흔까지 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찍이 애 놓고 일하다 몸이 쇠하거나 병들면 죽는 것이다. 그래서 환갑이면 장수했다고 보았다. 요즘은 그렇지 않다. 기대수명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호접지몽으로 유명한 장자(BC 365~270 추정, 송나라)가 죽어갈 때 제자들이 안장 문제를 논의하자 장자는 “천지를 관으로 삼겠다”고 말하고, 까마귀밥이 될까 염려하는 제자들에게 “까마귀에게 뜯어먹도록 주는 것과 땅에 묻혀 개미 떼나 땅강아지가 먹도록 주는 것이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장자가 바라보는 죽음은 자연의 일부, 삶과 죽음은 하나로 보았다.



흔히 망자에게 “돌아가셨다‘고 말한다. 죽음이 자연으로의 회귀라면 인간의 삶 또한 그렇다. 인간은 자연 속 일부이고, 자연은 거스를 수 없는 규칙으로 돌아간다.


죽음이 두렵고, 삶은 더 처절하다.


우리는 의학을 통해 삶을 연장하고 늙어 보이는 것과 죽음을 미룬다. 치료 수준은 꾸준히 달라지고 있다. 인공 관절, 심장 인공판막, 이제는 돼지 간을 이식하고, 줄기세포 배양·이식 등 인간 삶의 연장은 한계가 없어 보인다. 그뿐이랴, 외모마저 늙지 않기 위해 온갖 시술과 수술을 한다.


현대사회 와서 우리 육체는 온갖 화학물질에 찌들었다. 사람의 배변은 더러워서 거름으로도 쓰이지 못한다. 또 동·식물처럼 죽으면 땅에서 자연스레 썩지도 못한다. 장자의 말처럼 까마귀떼가 뜯어먹든, 개미떼가 먹든 자연에 다시 돌아가는 것과 다르게 이제 인간의 죽음은 자연스러움과 멀어 보인다.


죽음이 두려워서, 늙는 게 두려워서 인간은 자연의 규칙을 거스른다. 장자 사상을 살펴보면 삶과 죽음은 하나라고 한다. 결국,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삶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유한한 것을 두려워한다. 죽는 것, 이별하는 것, 퇴직하는 것, 졸업하는 것, 집 전세만료일이 다가오는 것. 심지어 전등이 나가도 두려움에 떨며 작은 빛을 찾는다.


죽음보다 처절하게 두려움 속에 산다. 고용 불안정, 비싼 분양가, 상대적인 스펙, 불만족한 외모, ‘퍼가요’ 당하는 통장, 의지할 데 없는 인간관계. 자연의 규칙을 외면하고 우리에게 남은 것은 “두려움”이다. 늙어 보일까, 사회에서 도태될까, 해를 당할까, 배신당할까, 어두워질까 봐 두려워한다.


자연에서 바라보는 죽음과 삶은 큰 경계가 없다.


두려워하지 말자. 주름살이 생겨도, 뼈와 장기가 낡아도, 실패하고 상처받았어도, 그 또한 자연의 규칙 속에서 흐르는 것이라면 말이다. 두려움이 빚은 욕심으로 육체가 죽어도 자연에 쉽게 돌아가지 못하는 것처럼, 삶 가운데 두려움이 함께라면 돌아갈 곳이 없다. 돌아갈 사람이, 돌아갈 장소가, 돌아갈 때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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