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미쓰 Nov 01. 2021

아무도 아이에게 게임 교육을 하지 않는다 (3)

피할 수 없다면 가르쳐라

게임 세계에서 탈출하는 방법


게임과 관련해서 부모들의 고민을 받아보면 가장 많은 비율이 '게임하는 시간이 너무 많아서'라고 확신한다. 부모의 입장에서도 아이가 게임을 잠깐 하고 공부도 한다면 좋을 텐데, 몇 시간이고 게임과 스마트폰만 붙잡고 있으니 속이 타들어가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아이를 키울 때 부모들은 자녀가 하는 일을 마칠 수 있게끔 항상 도와주고 알려준다. 예를 들면 밥을 한 그릇을 주고 - 이 밥을 먹어야 식사가 끝난다고 알려준다. 공부를 처음 가르칠 때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 거야 목표를 주고 - 문제집을 풀게 한다. 지금은 10시니까 잠자리에 들게 한다 - 그래야 내일 학교를 가기 위해 일찍 일어날 수 있다고 알려준다. 등등. 


간단한 문제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일상생활에 벌어지는 대부분의 일에 부모들은 그 이유를 잘 설명하고, 아이를 잘 달래 가며 시작과 종료를 교육시킨다. 그 과정은 부모로서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데 유독 게임에 관해서만 '스스로' 마칠 수 있게 하는 교육을 시키지 않는다. 



나는 이 이유를 부모와 아이의 게임을 대하는 입장차가 너무 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는 게임을 보통 사회악이라고 본다. 무조건 하지 않을수록 좋은 것. 하지만 아이는 게임을 정말 재미있고 제일 하고 싶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두 사람 간에 입장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협의'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평상시 아이를 키우면서 대부분 일에 잘 협상하는 부모라도 가정 내에서는 상대적으로 권력자이기 때문에 자녀를 사회악으로부터 지켜주고자 하는 정의감에 불타오른다. 그러니 강압적으로 아이의 게임시간을 통제하는 방법으로 일이 진행되는 것이다.  


그 시점부터 아이와의 관계는 요단강을 건너게 되는 것임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말이다. 


우리 아이가 처음 했던 게임은 아래에 후술 되어 있지만 스마트폰 게임인 캔디 크러쉬 사가였다. 이 게임은 30분에 하나씩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는 하트 하나가 생성되는데, 최대 하트가 5개밖에 안되기 때문에 적정 수준의 게임을 플레이하게 되면 자연적으로 플레이를 하지 못했고, 따라서 특별히 시간 통제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 이후에 하게 된 게임은 역시 스마트폰 게임인 브롤 스타즈였다. 나는 이 게임을 아이에게 의도적으로 소개해줬다. 그 이유는 나중에 후술 하겠지만 저학년 정도 아이에게 상당히 괜찮은 게임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저학년인 아이 또래집단에서 제일 많이 하는 게임이기도 한 브롤 스타즈는 게임 플레이 타임에 특별한 제한이 없다.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한 무제한으로 할 수 있는 것이다. 


아이가 이 게임을 시작한 후 다행히 흥미를 잘 붙여주었고 나와 와이프가 아이에게 요구한 것은 딱 하나였다. 



[ 게임을 하루에 할 수 있는 시간을 정해주고, 게임을 스스로 종료하게 하는 것] 



딱 이것 하나뿐이었다. 시간을 정할 때도 과하다 부족하다를 부모의 입장에서 판단하지는 않았다. 처음에 며칠 동안 아이가 어느 정도 게임을 하는지를 지켜보고, 적당하다 싶은 시간을 아이와 협의해서 정했다. 우리가 정한 시간은 주중은 40분. 주말은 1시간 20분 정도였다. 초등학교 저학년이 오로지 게임에 몰입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다소 과한 시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와 와이프가 걱정한 것은 아이가 스스로 게임에 대한 욕망을 통제할 수 있느냐였지 게임을 얼마나 하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시간이 늘어나면 오히려 스스로 통제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했고, 시간이 줄어들면 아이가 부모와 게임에 대한 대화의 문을 닫아버릴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그 적정 수준은 아이의 행동 패턴을 보고 결정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아이의 의견을 배제하고 부모의 의도대로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다음 우리가 고민한 문제는 채찍과 당근이었다. 상과 벌만큼 아이를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방법은 없다. 하지만 고민 끝에 채찍은 없이 당근만 주기로 했다. 만약 하루에 약속한 게임시간을 지켰다면 우리는 달력에 파란색으로 동그라미를 쳐주었고 실패한 날에는 빨간색으로 동그라미를 쳐주었다. 한 달 동안 파란색 동그라미가 25개 이상이면 작은 선물을 하나 주기로 했다. 특별한 것은 아니고 몇천 원짜리 장난감 같은 것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공부도 잘했지만 각종 꼼수에는 더 특출 난 재능을 발휘했던 나로서는 우려되는 상황들이 몇 가지 있었다. 예를 들면 이미 제한시간을 넘어버리면 아이가 그날 본인의 의무를 포기하고 무제한적으로 게임을 하면 어떡할까 하는 것들이었다. 또한 할 수 있는 시간을 정해주면, 본인이 게임을 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 시간을 마치 할당량처럼 꽉 채우는 것도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하였듯 시간에 대한 통제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아이에게 전해주고자 했던 의미는 다음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게임은 더 할 수도 있고 덜 할 수도 있는 것. 

둘째. 게임의 시간과 관심을 정하는 주체는 너 스스로이며 엄마 아빠가 같이 도와주겠다는 것이었다.


나의 이 의도는 아이가 게임에 대한 의미를 본인이 체득하고 스스로 컨트롤해야만 완성된다. 이것은 처음부터 기질적으로 타고나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적으로 중독증상처럼 과몰입하는 것도 아니다. 지속적인 훈련과 패턴을 변화시켜 어렸을 때부터 교육한다면 아이 스스로 잘 컨트롤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내가 이 계획을 처음 와이프에게 이야기했을 때 우리에게도 약간의 불안감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왜냐하면 엄마 아빠가 스스로 나서서 아이에게 게임을 같이 하고 체계적으로 그 방법론에 대해 교육하겠다고 나서는 사례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 방법론을 내가 스스로 구축하고 그 첫 시도 대상자로 내 아이를 스스로 선택했다는 사실은 적지 않은 부담이 되었다. 


하지만 내가 어떤 교육방식이 좋은지 찾아봤던 인터넷 정보들은 게임에 대해서 뇌파, 도파민, 중독 증세 같은 자극적인 단어로 교육의 중요성은 어필하지만 아이의 입장에서 게임을 분석하고 조언하는 글들은 거의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내가 우리 가족들을 설득하고 이 방법론을 잘 실행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내 경험에 기인했다. 


전부 내가 겪었던 일들을 바탕으로 했기에 좀 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나는 게임을 좋아하는 어린아이였고, 지금도 갖가지 게임을 좋아하는 키덜트지만, 어렸을 때는 무던히 엄마 아빠에게 혼나던 학생이었다. 오락실, 피시방, 온라인게임, 대전 게임, RPG, 플레이스테이션, 에뮬 게임, 닌텐도 스위치 등 다양한 플랫폼과 장르에 대해 이해하고 있다는 것은 게임을 많이 해봤다로 그치는 게 아니라, 아이가 어떤 포인트에서 불만을 가지고 행복감을 가지는지를 알고 있다는 의미를 가진다. 


아직도 밥을 먹기 싫다고 징징대는 아이가 


'아빠. 나 오늘 게임 30분 했어. 오늘은 게임을 그만할 거야' 


라고 자신의 상황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표현하는 순간. 나는 우리의 교육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훈련은 지금도 너무도 편안하게 지속되고 있다. 


<다음 편에 계속>


작가의 이전글 아무도 아이에게 게임 교육을 하지 않는다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