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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미쓰 Nov 01. 2021

아무도 아이에게 게임 교육을 하지 않는다 (4)

피할 수 없다면 가르쳐라

게임을 당장 끄지 못하는 이유


'게임 그만하고 나와서 밥 먹어-'


라고 말했는데, 아이가 이 판만 하고 갈게요-라고 말하는 순간. 일반적인 엄마 아빠의 머릿속에서는 간신히 지탱해주던 이성의 퓨즈가 나가버릴 수 있다. 부모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아이에게 가장 따뜻한 온도와 최적의 맛을 보장하는 지금 이 시점에 밥을 주고 싶을 것이다. 게임은 오늘도 하고 내일도 하는데 게임을 잠깐 끄거나 멈추고 밥을 먹는 게 왜 바로 실행이 안 되는 게 이해가 안 될 수 있다. 


[ 하지만 아이의 입장에서는 밥은 오늘도 먹고 내일도 먹는 건데, 왜 지금 중요한 이 게임을 꼭 끄거나 멈추게 하는지 이해가 안될 수 있다 ] 


나는 이 부분이 아이와 소통하는 중요한 연결고리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나는 아이에게 내가 이미 잘 알고 있는 게임들을 소개해 주었고, 아이가 관심이 있는 게임은 나도 기본적으로는 꼭 해보려고 노력한다. 그렇기 때문에 왜 아이가 당장 게임을 끄지 못하는지 100% 이해하고 있다. 식사를 준비한 부모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있지만 나는 그런 논쟁이 생긴다면 상황에 맞춰 아이의 편을 들어주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게임 중에서 다른 유저들과 같이 협력해서 팀을 구성해 하는 게임들이 있다. 자녀들이 하는 게임 중에서는 LOL이라고 불리는 리그 오브 레전드가 대표적일 것이다. 모르는 사람과 팀을 짜서 하기도 하지만 친구들과 팀을 짜서 하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5:5로 진행되는 이 게임에 만약 내가 게임을 중간에 포기하고 나가게 된다면 우리 팀은 그 게임을 무조건 패배하고 만다. 



그러면 아이는 사이버 세계에서 신뢰를 잃고 만다. 엄마 아빠와의 권력싸움에서 패퇴한 아이는 게임 세계에서도 배신자로, 친구들 사이에서는 엄마 아빠 말 거역 못하는 나약한 아이로 낙인이 찍혀버린다. 이게 반복되면 현실세계에서도 영향을 받는다. 집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잘 운영되고 있던 아이의 게임 세계가 무너져 내리면 그 자체로도 큰 상처가 되고 치유가 필요하다. 


문제는 이러한 것들을 부모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게임은 아이의 삶의 일부인데, 혹시 아직도 일개 오락이라고 생각하는 부모가 있다면 이제는 그 생각을 바꿔야 할 시대가 된 지 오래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 나는 그래서 부모에게 게임을 같이 해보고, 아이가 혹시 집에서 게임 이야기를 한다면 그 이야기를 잘 듣고 호응해 주기를 권유한다. 


아이가 하는 게임에 관심을 두면 아이가 특정 시간이나 날짜에 플레이를 해야 하는 이유가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게임 내에 클리어해야 하는 특정 미션이 있거나, 몇 판을 더 하면 주어지는 특별 보상이 있거나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럴 땐 게임의 동료로 내가 직접 투입되기도 한다. 우리 아이가 즐겨하는 브롤 스타즈 같은 모바일 게임에도 그러한 경우가 발생한다. 


'팀을 이뤄 5판을 완료하시오'라는 미션이 있는 경우 내가 직접 아들과 같이 편이 되어 신나게 적들을 무찌르고 아들에게 오늘 힘든 전투를 마쳤으니 조금 일찍 종료하는 건 어떤지 권유한다. 아들도 그 의견에 공감하고 동의한다. 나는 아이가 정말로 지금 밥 먹는걸 조금 늦춰야 할 만큼 그 세계 안에서의 플레이가 중요하면 가족을 설득하여 이 판을 클리어하고 먹도록 한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발생한다. 지금 당장 중요한 판이 아니라면 당장 종료하더라도 너의 게임과 삶에 큰 변화가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실제로 체험하게 한다. 너의 레벨 점수가 조금 깎였을 뿐, 전혀 화낼 일이 아니며 그것보다 가족들이 너를 위해 따뜻한 식사를 준비했다는 것도 소중하다는 걸 이야기한다. 물론 우리 아이도 처음부터 이해해주었던 것은 아니었고, 지속적인 대화와 의견교환이 필요했다. 


이미 협의한 제한시간을 넘어버린 경우에도 강압적으로 제지하지는 않는다. 단지 지금 게임시간이 넘었다는 걸 알려줄 뿐, 스스로 통제할 때까지 믿고 기다리는 게 조언의 전부이다. 특별한 날에는 더 해도 된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어른들만 있는 자리에 아이들이 부득이하게 끼게 되었을 경우 주로 그런 상황이 발생하는데, 가끔 어른들의 편의를 위해 아이들을 게임해도 된다고 방임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그럴 때도 달력에 동그라미를 배려해주지는 않지만, 그럴 때 아이들은 스스로 게임을 자제하고 안 하는 경우도 생긴다. 아뿔싸. 그러면 나는 불편한 상황에서도 어른들보다 아이와 같이 시간을 보내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아이도 조금씩 성장하는 것처럼 나도 처음 겪어보는 아빠의 삶 속에서 아이와 같이 성장하는 것이다. 아이가 자신의 영역과 행동을 정립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부모는 그 상황을 놓치지 않고 호응해주어야만 한다. 이러한 상호작용은 아이를 조금 더 주체적으로 만들 수 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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