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20일 목요일

by 백현진

3년 전 방콕 여행을 가기 전에 자동카메라를 하나 샀다.
방콕에서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싶어서였는데, 중고 카메라다 보니 작동이 잘 되나 확인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기 전 서울에서 몇 롤인가를 먼저 찍었다.
모두 문제없이 잘 나왔고, 그대로 필름 여러 개와 함께 방콕행 여행 가방에 실었는데...
방콕에 도착해 사진을 찍으려니 셔터가 눌리지 않고 액정에는 (아마도 오류 코드인) 처음 보는 영어와 숫자만이 나왔다.
여행지에서 그걸 사진으로 찍어 이리저리 문의해본 결과, 카메라는 고장이 났고 그걸 여기서 고칠 방도는 없어 보였다.
결국 마분콩을 전부 뒤져 한국에서 사는 것보다 두 배는 비싼 값을 치르고 일회용 카메라를 샀는데,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히 작동되었다.
기가 차면서도 기기라는 게 작동하는 온도가 있으니 아마도 방콕의 무더위가 원인이 아니었을까 넘기고 그 후로 서울에서 아무 문제 없이 사용해왔는데, 며칠 전 산책길에서 그때의 방콕에서와 동일한 액정이 떴다.
다른 점이라면 셔터는 눌렸다는 것.
우리 집 프린트도 맨날 오류 액정이 뜨면서도 여전히 스캔도 프린트도 덜컹거리면서 잘만 하는 것처럼, 그저 셔터 한 번 누르면 오류 액정이 뜨고 또 한 번 누르면 또 한 번 뜨는 거라 생각하면서
한편으로는 서울이 그때의 방콕만큼 더워진 건가 싶다.
아닌 게 아니라 며칠 전 산책길에서는 무덥고 습하고 하지만 차가운 바람이 부는 게(방콕까지는 아니라도) 꼭 대만 같다고 생각한 참이었다.
몸은 서울에 있지만 습한 바람을 맞으며 나와 나의 카메라는 어딘가를 여행 중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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