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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현진 Sep 28. 2021

사랑해, 두부

평생 야생동물 같았던 두부는, 숨이 넘어가 새벽부터 병원에 달려갔을 때도 혹시 보호자는 넥카라를 씌울 수 있지 않을까 선생님들이 나를 불렀을 때도 발톱을 잔뜩 세워 나를 할퀴고 피가 나도록 물어뜯어 결국 마취를 해야 했다.
항상 피가 나고 퉁퉁 붓도록 두부에게 물리고 할큄당해왔던 나는, 두부가 아파 그런지 평소보다 힘이 없다 생각해 슬퍼하며 대기석으로 돌아왔는데 간호사 선생님께서 소독약을 들고나와 너무 상처가 깊다며 발라주시는 것에 울컥했다.
우리 두부가요, 평소에는 훨씬 더 세게 잘 물거든요.
결국 두부가 내 손등과 팔에 남겨둔 퉁퉁 부은 상처가 두부의 마지막 흔적이 되었고, 그 상처들이 미처 아물기도 전에 두부는 숨을 거두었다.
많이 울고 멀리까지 데려가 장례를 치러주고 한 줌이 된 뼛가루를 소중히 안고 돌아오고도 한 주는 지나 두부가 남겨둔 내 손의 상처는 아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상처가 온전히 아물고, 어디에나 두부가 있던 집을 떠나 이사를 하고 나니 이제 그 어디에도 두부의 흔적은 없다.
두부가 할퀴고 물어뜯은 내 손의 상처가 완전히 아물고 나서야 나는 이제 두 번 다시 두부가 내게 상처를 입히는 일은 없을 것이고 다시는 볼 수 없다는 현실에 온전히 부딪혔다. 
어떤 상처는 이토록 아물지 않기를 바랄 수도 있는 것이다. 건강한 나의 세포들은 상처를 말끔히 아물게 만들었고 이제 그 어디에도 두부의 흔적은 더이상 남지 않았다.

햇볕을 받아 따끈따끈하던 정수리,
달콤하고 귀여운 분유향이 나던 두뺨,
보드라운 배와 나를 물어뜯고 싶어 한껏 통통해진 주둥이.
무엇이건 잘 먹고 야생동물 같았던 내 고양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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