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린 일기를 쓰는 시간

by 백현진

SATURDAY

March

14

오늘은 어떻게든 마무리해야 할 작업이 있어, 근처 카페에 갈 계획 세워두었다. 작업하고 돌아오면 힘들 테니 그럼 집에서 서류를 먼저 써야 할까? 컴퓨터를 켠다. 아이패드에 대략 적어둔 내용을 열었지만 막상 옮기려니 수정해야 할 내용이 많다. 서류를 작성하고 보니 어느덧 오전이 다 흘러간 참이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 주말이잖아. 사람 많으려나. 자리가 없으려나. 자리가 없으면 갈만한 근처 카페가 달리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애초에카페에 가서 작업하려는 거지. 책상이 없구나. 아니 책상이 있긴 하지. 그림을 그릴 만한 책상이 없을 뿐, 쿠션이 이미 다 꺼져버린 일인용 소파에 다리를 세워 웅크리고 앉아 그림을 그리다 보니 허리가 아파서 그래서 카페에 가기로 한 거였지. 카페에 가려니 밀린 일기가 생각난다, 며칠 못 적었는데. 별 내용은 없지만. 이걸 다 써야 작업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작은 에코백에 두꺼운 일기장을 밀어 넣는다. 카페에 도착해 보니 평소보다 훨씬 한적하다. 어째서지. 아, 주말이라 다들 외출을 했구나. 주말에 카페에 나와 작업을 하려는 사람은 많지 않은 거구나 콘센트가 있는 자리에 앉아 충전기를 꽂는다. 옆자리 노인이 보고 있는 릴스에서 쉴 새 없이 요란한 소리가 은은하게 새어 나온다. 이어폰이 없는 걸까 고개를 돌려 보니 노인의 귀에는 이미 이어폰이 꽂혀있다. 어쩔 수 없구나. 가방을 열어 들어 있는 걸 모조리 꺼낸다. 일기장, 아이패드, 펜 케이스, 충전기, 아무렇게나 접어 넣은 A4 용지 같은 것들. 카운터에서 커피와 베이글을 받아온다. 배가 고프지도 않은데 어째서 꼭 무언갈 먹어야 시작할 수 있을까. 무언갈 먹고 오늘 꼭 쓰지 않아도 -밀려도, 쓰지 않아도 되는- 일기를 쓰고 있을까. 오늘 반드시 끝내야 하는 건 이런 일들이 아닌데도.

카페에 들어온 지 한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나는 여전히 할 일을 시작도 하지 못한 채 밀린 일기를 쓰고 있고, 옆자리 노인은 자신이 마신 커피를 치우지도 않은 채 외투를 입고 가방을 메고 어딘가 -아마도 본인이 돌아가야 할 곳으로- 가버렸다. 카페는 여전히 한적하고 연결된 아파트에서 온 사람들만이 집 앞 마트 가듯 편안한 옷차림으로 앉아 있다. 이 아파트에 살지 않는 나도 비슷한 차림을 하고 있다. 이제는 정말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오늘 마무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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