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꼬맹이여행자 Feb 20. 2019

나는 떡볶이를 만들 줄 몰라

#호주, 시드니 : 자신이 없다는 핑계로 외면해왔던 것들 마주하기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공항(출처 : Pixabay)



어깨가 찌뿌둥하다. 에어아시아의 비좁은 좌석과 긴 환승시간을 견딘 탓이다. 드디어 호주 시드니 공항에 도착했다. 기지개를 시원하게 한 번 켠 후, 주위를 둘러보았다. 북적거리는 사람들 틈에 홀로 서있으니 드디어 여행이 시작되었다는 게 실감이 난다.


시드니에서는 처음으로 카우치서핑*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낯선 사람의 집에서 잔다는 것이 무섭기도 했지만, 숙박비도 절약하고 외국인 친구도 사귀는 시스템이 일석이조라고 생각했다. 호스트 삿팔이 페이스북 메시지로 보내준 주소를 다시 한번 확인한다. 다행히 그의 집은 공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 카우치서핑이란 현지인과 여행자를 연결시켜주는 여행 커뮤니티이다. 현지인이 여행자를 집에 초대해서 무료로 재워주면서 함께 관광지에 가거나 요리를 하는 등 문화 교류 체험을 하게 된다.


내 몸만 한 배낭을 메고 삿팔의 집에 도착 


삿팔은 호주에서 오랜 기간 거주한 인도인이다. 내 영어 이름이 Jenny라는 것을 듣자마자 Jenny는 여자 당나귀라는 뜻이라며 한바탕 웃어 젖힌다. 유머러스하고 호탕한 그의 성격에 걱정되던 마음은 한순간에 사라졌다.


카우치서핑은 호스트(현지인)가 무료로 잠을 재워주니 서퍼(여행자)는 작은 선물을 하거나 요리를 해주는 것이 관례이다. 첫날 저녁으로 인도식 카레를 해주는 그를 보며 나도 무언가 해주어야 할 것만 같았다. 쉽게 해 줄 수 있는 한국 요리가 뭐가 있을까 고민해보니 떡볶이가 떠올랐다.


자다가도 떡볶이 소리만 들으면 벌떡 일어날 정도로 좋아했지만, 만드는 것은 도통 자신이 없다. 사실 이전에 떡볶이 만들기에 도전했다가 보기 좋게 실패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퉁퉁 불어 터진 떡볶이를 억지로 먹으면서 요리는 나와 맞지 않는다며 시도조차 하지 않고 살아왔다.


‘한 번 다시 해 봐? 또 망치면 어쩌지?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해 줄 수는 없는데!’



카레 한 그릇을 비우고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보는 그의 앞에서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 못 하다가 겨우 말을 꺼냈다.


“삿팔, 내가 한국 요리해 줄까?” 

“오, 좋지. 단 너무 맵지는 않게 만들어 줘.”


그는 별로 기대도 하지 않는다는 듯 티브이를 보며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그때부터 나는 떡볶이 만드는 법을 숙지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인터넷에는 레시피가 널려 있었다. 그래도 걱정이 되는 마음에 눈 감고도 외우다시피 할 정도가 된 후에야 겨우 잠에 들 수 있었다. 


아름다운 시드니의 밤


다음 날 저녁이 되자 삿팔이 퇴근하고 돌아왔다. 우리는 근처에 있는 중국 마트에 가서 필요한 재료를 사 오기로 했다.


“어디 보자. 떡은 여기 있고. 어묵도 사야겠다. 중국 마트에 있을 건 다 있네! 헉, 그런데 고추장이 없잖아!”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하필이면 고추장이 품절 상태였다. 고추장이 있어도 만들 수 있을까 말까 한 판국에 가장 중요한 재료인 고추장이 없다니!


아쉬운 대로 칠리갈릭소스를 집어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 소스가 고추장과 비슷한 맛을 내주기를 바라면서.


한동안 부엌에서 소스와 씨름하며 한국에서 먹은 떡볶이와 비슷한 맛을 내기 위해 노력했다. 마늘과 양파를 이용해 단 맛은 중화시켰지만 색깔은 도저히 빨간색이 나오지를 않는다.


그래도 꽤나 그럴듯한 모양새를 가진 떡볶이가 만들어졌다. 맛이 훌륭하지는 않지만 못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삿팔이 계속 집어먹는 걸 보면.


칠리갈릭소스로 만든 떡볶이


엉망이 된 부엌을 치우면서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드디어 내가 떡볶이를 만들다니!


지금껏 나는 간단한 음식조차 만들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머나먼 호주 땅에서 고추장도 없이 떡볶이를 만들었다. 어쩌면 시작부터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겁만 집어먹고 노력조차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무엇이든지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는데.


문득 자신이 없다는 핑계로 외면해왔던 것들이 떠오른다. 몇 년째 제자리걸음인 영어 실력, 악기 하나 정도는 다룰 줄 알아야 한다며 야심 차게 등록했다가 2주 만에 포기했던 통기타, 물이 무섭다는 핑계로 배우려고 하지도 않았던 수영……. 


앞으로는 막연히 못 할 거라고 생각해왔던 일들도 일단 부딪혀봐야겠다. 이것저것 시도하다 보면 의외의 재능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생각보다 나는 할 수 있는 게 많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칠리갈릭소스 떡볶이를 맛있게 먹고, 삿팔(오른쪽)과 함께 참석한 크리스마스 파티


참, 나 지금은 떡볶이 잘 만든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