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바라나시 : 우리에게 필요했던 것은 어쩌면 쉼표
바라나시에 여행을 온 한국인들은 대부분 ‘빤데이 가트’ 근처 게스트하우스 밀집 지역에 묵는다. 숙소뿐만 아니라 각종 레스토랑과 상점들이 모여있는 메인 가트이기 때문이다.
세인이도 가트를 오가며 자주 마주치던 사람 중 하나였다. 스쳐 지나갈 줄 알았던 그와 친해진 이유는 토스트 때문이었다. 바라나시에서만 판다는 말라이 토스트. 세인이는 새벽부터 일어나 매일 친구들을 위해 토스트를 사 왔다.
“내일 말라이 토스트 사러 갈 때 나도 데려가 줘.”
세인이와 제대로 말을 섞어본 것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나는 맛있다고 극찬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말라이 토스트에 대한 궁금함을 참을 수 없었다. 혼자 가기에는 끝도 없는 골목이 이어져있는 바라나시 특성상 길을 잃어버릴 것이 틀림없었다.
다음 날, 어색한 동행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멋쩍은 웃음을 한 번 지은 후 아무런 말도 없이 걷기만 했다.
십오 분쯤 흘렀을까. 마침내 도착한 가게에서는 토스트를 굽는 향긋한 냄새가 피어올랐다. 이른 새벽인데도 한 평 남짓한 공간에는 토스트와 인도의 전통 티인 짜이를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어떻게 이런 곳을 다 알아냈어?”
“어…….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인도인 친구가 데려와줬어요.”
말라이 토스트는 잘 구워진 토스트 위에 생크림 같이 생겼지만 달지 않은 우유 크림을 얹고 설탕을 뿌려 마무리한 음식이었다. 한 입 베어 무니 바삭한 토스트 사이로 고소한 크림이 삐죽 고개를 내민다. 아직 끝이 아니라는 듯 화룡점정으로 달달한 설탕이 입 맛을 돋우어주었다. 달랑 두 개 밖에 내어주지 않는 게 아쉽기만 하다. 그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세인이가 가지고 있던 토스트를 내민다.
“누나, 토스트 하나 더 먹을래요?”
“고마워, 너 따라서 오지 않았으면 후회할 뻔했어! 너무 맛있다.”
든든하게 배를 채운 우리는 남은 말라이 토스트를 다 싸 달라고 하고 숙소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다시 찾아온 정적 속에서 문득 그가 왜 여행을 떠나왔는지 궁금해졌다. 인도에 오는 사람 치고 특이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는데. 그는 화려한 색감의 현지 옷을 입고 있는데도 아주 단정하고 평범한 대한민국의 청년 같았다. 일탈이라고는 전혀 해보지 않았을 것 같은 착하고 건실한 청년.
“세인아, 너는 왜 인도에 왔어?”
“음……. 사람을 만나려고 인도에 왔어요. 제 삶의 반경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저랑 비슷한 인생을 살고 있잖아요. 왠지 인도에 오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누나는 왜 인도에 왔어요?”
나는 퇴사를 하고 세계일주를 떠나온 이야기를 간략하게 말해주었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그는 가지런한 흰 이빨을 내보이며 웃음을 지었다.
“무언가 내려놓고 오기 쉽지 않았을 텐데 멋지네요. 저는 공부만 하면서 평범하게 살아왔어요. 고등학생 때까지는 수능 공부만 열심히 하다가 대학교에 와서는 높은 학점만 좇는 삶이요. 이대로 4학년이 되고 나면 다시는 배낭여행 같은 건 못 해 볼 것 같았어요.”
그 날 이후 우리는 매일 말라이 토스트에 짜이를 곁들여 마시는 시간을 공유했다. 그가 바라나시를 떠나는 날까지도.
“누나, 말라이 토스트 정말 신기하지 않아요?”
“왜?”
“들어가는 재료라고는 꼴랑 빵 위에 크림과 설탕을 얹은 것뿐인데 어떤 토스트보다도 맛있잖아요. 저는 말라이 토스트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인생도 저렇게 살아가면 좋지 않을까.”
세인이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바라나시에서 한 달 정도 지내면서 한 거라고는 토스트를 먹으러 다니고 가트를 보며 팔찌를 만든 것뿐이라고. 그런데 그 시간들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행복한 날들이었다고.
그의 말을 듣고 있으니 나 역시 지난 삶이 스쳐갔다. 누군가에게 인정받으려고 내 위에 하나라도 더 얹기 위해 애쓰던 시간들.
인도로 흘러든 우리들은 일상에서 잠시 멈춤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던 걸까.
아무것도 아닌 토스트 한쪽을 먹으며
행복한 웃음을 내보일 수 있는 그런 담백한 시간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