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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엄과 낭만사이 Apr 26. 2023

야외 웨딩장식 데뷔전

02. 지구력과 체력

"금요일날 검은 옷 입고 오세요" 

핀터레스트에서 정말 많은 야외 웨딩 사진들을 찾아본 나다. 그 로망을 실현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나에게  왔다.


집에서 1시간 반이 걸려 도착한 강화의 어느 호텔. 나의 작은 차는 굉음을 내며 힘겹게 언덕을 올라간다. 6월, 라벤더로 가득하다. 그저 그 향기, 그 습도 심지어 귀뚜라미가 우는 소리까지 생생하다. 높은 고도라 그런지 탁 트인 뷰와 상쾌한 공기는 야외 웨딩을 하기에 딱이다.


라벤더로 가득한 6월의 강화 어느 호텔


 



D-DAY 1. 예식 전날

전날은 아치를 제외한 거의 모든 것을 세팅해둔다.


준비된 꽃을 보니 핑크, 보라, 화이트인 걸로 보아 신부님은 여리여리하고 여성스러울 것 같았다.


오늘의 버진로드는 수국이 들어간 핸드타이드 10개를 만들어 투명하고 길쭉한 Vase에 물을 가득 채워 장식하는 디자인이었다. 샘플로 다발을 하나 만들어주셨고, 나머지를 똑같이 만들라고 하셨다. 노팅은 끈이 아닌 케이블타이를 사용했다. (참고로 학원에서는 꽃다발을 끈으로 묶는 여러 가지 방법을 가르치고 연습시킨다.)


"케이블타이로 묶어요?"

"웨딩 할 때 필수예요."

'나는 무엇을 위해 영국식 노팅법을 죽어라 연습했던가'

역시 실전은 달랐다.


물 만난 고기처럼, 너무 신나게 핸드타이드 10개를 만들어냈다. 국비지원 학원에서는 한 강좌 당 수업시간이 3시간가량 된다. 핸드타이드 연습을 하고 집에 갈 때쯤 되면 손 온도에 지친 꽃들이 시들시들해져 있다. 학원 수강만으로는 실전에서는 어떤 스피드로 해야 하는지, 어떤 공간에 쓰이는지 알 길이 없다. 그런데 맹연습했던 스파이럴(줄기 배열이 나선형이 되도록 꽃다발을 잡는 형태)을 실전에서 정말 그대로 쓰는 것이 신기한 것 아닌가. 근데 또 묶는 건 케이블타이라니! 그저 모든 것이 신기했다.  그렇게 한 자리에 서서 단숨에 10개를 만들어냈다.


"지구력이 좋네요. 가능성이 보여요"

'이 정도는 다 하지 않나'라고 생각했다.

 아니 순서와 방법도 다 알려주시는데 못할 게 없지 않나. 거기에 나의 의지는 레벨로 따지면 만렙인 상태인데 핸드타이드 10개를 왜 못한단 말인가. 50개라도 할 수 있었다.


야외 웨딩의 좋은 점은 주변 나무나 시설들을 오브제로써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주변 나무들에 액자를 걸어 행잉장식을 하고, 갈란드를 만들어 나무와 나무 사이 공간을 채웠다.


추가로 신랑 턱시도달아줄 부토니에와 양가 혼주 부모님께 달아드릴 코사지도 미리 준비해서 물에 담가놓는다. 코사지는 심플할수록 예쁘다.




D-Day. 예식 당일

아치에 꽃을 스피드 하게 꽂고 전체적으로 완성도를 점검한다.


그보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선크림을 두둑이 바르는 것. 야외 웨딩에서 오전부터 작업하려면 햇볕이 정말 뜨거워서 모자도 필수이다. 생각보다 정말 많이 탄다. 기미도 많이 생긴다.


서둘러 아 밑에 사다리를 세팅하고, 일하기 편하도록 동선에 맞게 꽃 양동이를 잘 배치한 뒤, 대표님은 사다리 위에 올라갔고, 나는 밑에서 그린부터 손질하여 올려드렸다.

 그린을 먼저 꽂는 것은 그림에서 밑작업, 그러니까 스케치와 같은 과정이다. 그린을 많이 꽂을수록 싱그러움과 자연스러움이 더 잘 표현된다. 그다음에는 부피감이 있는 수국부터 꽂아 전체적인 안정감을 잡아주고 그다음에 장미, 리시안, 튤립 등 다양한 꽃들을 골고루 섞어 꽃을 꽂아준다. 1시간 정도 작업을 하고 나니 아치가 완성이 되었다.

마지막으 아치에 민트색 천을 감아 색의 조화를 더해준다.


그리고 주인공이 등장하면, 비로소 그림이 마무리된다.

밤샘 작업의 피로함이 눈 녹듯 녹고 영혼은 충만해졌다.




보통 플로리스트하면 샵에서 우아하게 꽃을 사랑스럽게 쳐다보면서 유유자적하게 꽃다발을 만들고 있는 그런 이미지를 많이들 상상하지만 미디어가 만들어 낸 가장 예쁜 이미지가 그것이므로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 하지실제로는 무거운 짐들을  옮기고 사다리를 타고 높은 곳에서 장시간 꽃을 꽂는, 체력을 많이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그래서 실제로 외국에서는 남자들이 많이 선택하는 직업이기도 하다.


모든 일이 다 그렇겠지만

플로리스트에겐 정말이지 체력적, 정신적 지구력을 필요로 한다.

P.S 철수 후에는 녹초가 되고 정말 힘든 날은 마사지를 받고 퇴근한다.


Tip
핸드타이드 : 손으로 꽃을 어레인지 하는 것으로, 플로리스트에게 기본 중의 기본인 스킬입니다. 오른손은 꽃을 들어갈 자리에 배열하고, 이때 줄기 배열은 나선형이 될 수 있도록 합니다. 왼손은 자리에 들어간 꽃이 흔들리지 않도록 적당한 힘으로 잘 잡고 있어야 하는데 이 모든 과정이 자연스러워지도록 정말 많은 연습이 필요합니다. 처음에는 어렵습니다. 처음에는 어깨와 손에 힘도 많이 들어가고 손바닥에 땀도 많이 납니다. 핸드타이드를 잡고 포장까지 최대 20분만에 해내야 합니다. 연습만이 살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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