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회사에 가던 시간보다 일찍 일어나 엄마를 모시러 갔지만, 평일 출근시간에 걸리고 말아 평소 30분이면 될 거리를 1시간 40분이 걸려서 용인에 도착했다. 엄마 짐까지 싣고 본격적으로 여수행 고속도로에 몸을 맡겼다. 졸린 두눈의 틈 사이로 고속도로 양 옆으로 시속 120km/s 로 지나가는 노란 잎의 나무들이 참 예쁘다 라고 느꼈다.
여수는 두 번째 방문이다. 딱 1년 전쯤, 여수/순천 여행을 한 적이 있는데, 들어가는 밥집마다 다 맛있었던 기억, 자연이 살아 숨 쉬는 순천만 습지에서 황홀한 바람을 느꼈던 기억이 다시 여기로 오게 했다. 사실 한 번 갔던 여행지가 그렇게 좋지 않고서야 다시 오기는 힘든데, 많이 좋았었나 보다.
퇴사하기 전날, 친했던 P팀장님에게 물었다. 2주간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세요?라고.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읽고 싶은 책을 열 권이든, 스무 권이든 미친 듯이 읽고 싶다고.
어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분이 또 있는지 신기했다. 이번 2주 살기에서 나는 네 권의 책을 챙겼고, 얼마나 읽고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햇살이 들어오는 창가 탁자에서 책을 읽으면 시간이 너무 잘 갈 것 같다. 공간이 주는 힘이 이런 것인가 싶다.
3 bay 구조로 된 완벽한 오션 뷰. 생각한 것보다 훨씬 깔끔하고 넓다. 기분이 좋다. 침대에 누워서 '바다 멍'을 2주 내내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설렌다.
누구에게나 로망이 있지 않나. 바다가 보이는 공간에서 살고 싶다는. 한강뷰 로망을 이렇게라도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
가지고 온 짐들을 각 방의 옷장에 넣고, 내가 쓰기 편한 위치에 배치했다. 옷들도 꼭 필요한 것들만 가지고 오니, 내가 좋아하는 옷과 신발, 꼭 필요한 화장품들이 자연스럽게 선별된 것 같다. 집에 돌아가면 너저분하고 당장 사용하지 않는 불필요한 물건들은 처분해야지.
나른한 탓에 잠깐 자고 일어나니 또 바다의 모습은 변해있다.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시간대별로 변하는 바다의 모습들이감탄을 자아낸다.
여수밤바다
남편을 만나고 나서는 예전에 안 먹어본 음식들을 자주 접한다. 나는 입이 짧다. 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예전보다는 새로운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많이 사라졌다. 그리고 우연히 접한 새로운 음식으로 인해 기존의 내 편견이 깨지기도 한다. 그 공로는 오롯이 남편에게 있다. ’무조건 안 먹어!‘ 하는 스스로의 생각이 나를 가두는 거라며, 몸에 좋은 음식들을 지치지도 않고 지속적으로 권한다. 그 덕에 나는 새로운 맛을 알아가고 있고, 스펙트럼이 넓어지고 있다. (남편은 나 때문에 스펙트럼이 좁아지고 있다고 한다.)
이번 여수살이를 통해 내 입맛은 더욱 넓어질 수 있을까?
이번 여행은 무계획. 내일 뭐 하지는 내일 일어나서 생각하기로. 마음 가는 대로 그렇게 살아도 괜찮다는 것을 나 자신에게 가르쳐 주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