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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엄과 낭만사이 Apr 29. 2023

함께 있을 때 아프셔서 다행이예요

02. 아프지 말 것 (2일차)

어제부터 엄마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정신적 힐링이야 이제부터 하면 되는데 체력이 따라주지 않는다니.. 즐기는 것도 건강할 때 가능한 일이다.


단기적으로 체력 보충이 필요하다. 오늘은 특별히 어디 나가지 않고 따뜻한 방에서 쉬기로 했다. 우리 셋 모두 보일러 시스템을 이해 못 해 불을 넣지 않고 잤더니 아침에 으슬으슬한 기운이 올라왔다. 뜨듯한 게 필요해. 이순신광장 근처에 있는 국밥집에서 팔팔 끓인 콩나물 국밥 한 그릇을 들이키고나니 속이 좀 풀리는 듯하다.


이순신 동상과 여수식 콩나물국밥


콩나물국밥 하니 남편과의 연애초기가 생각난다. 그가 나에게 물었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고.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나는 콩나물국밥만 매일 먹어도 되는 사람이에요 ‘라고 했다. 다양한 음식을 먹으며 느끼는 기쁨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내가 어릴 때, 일을 하셨던 엄마는 콩나물국을 자주 끓여 두셨다. 별 다른 재료가 들어가지 않은 맑은 콩나물국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끓이기 간편하고 재료도 콩나물만 있으면 되니, 바쁜 아침에 엄마에게는 그게 최선이었겠다 하는 생각이 든다. 사회에 나온 후에는 자연스럽게 콩나물국밥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되었다.

그런데 먹는 것이 삶의 낙인 남편은 나에게 콩나물국밥 이외에 다른 세상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못 먹던 음식을 이제는 먹을 줄 알게 된 것도 제법 많다.

맛의 스펙트럼이 많이 발전한 나에게 남편은 우스갯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콩나물국밥만 먹는다고 해서 식비 많이 안 들겠다고 생각하고 프러포즈한 건데, 이렇게 잘 먹을 줄 알았나…”

이제는 먹는 즐거움을 조금은 알 것 같다. 특히 어제 선어회를 먹을 때처럼, 평소 싫어하던 음식이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때에는 내 안에 있는 한계를 뛰어넘은 느낌도 조금 든다.






여수에서 그렇게 유명하다는 ‘바다김밥’과 함께 짬뽕라면을 끓여 점심을 해결했다. 김밥과 라면의 조합, 거기에 오션뷰.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코가 막혀 무슨 맛인지도 모르지만, 사위가 끓여주는 라면도 먹고 호강한다 라는 말씀을 연신 하시는 소박한 우리 엄마. 모시고 오길 정말 잘했다.





책도 읽고 빈둥거리다 보니 저녁때가 또 다 되어가는 것 같다. 밥 먹는 시간은 왜 이렇게 빨리 돌아오는 건지.

청양고추를 팍팍 넣은 된장찌개를 끓이려다 마음을 고쳐먹고 저녁거리를 사러 남편과 시장에 들렀다. 커다란 타이거새우가 눈에 들어온다.

"새우구이 먹을까?"

"새우보다는 장모님 기력 회복하시게 낙지 데쳐 먹는 건 어때? 낙지는 소도 일으킨다잖아"

생긴 것과는 다르게 자상한 사위일세.


낙지 한 마리는 큰 놈으로 15,000에 구입했다. 낙지를 처음 사보니 이렇게 비싼 재료인지도 처음 알았다.  



엄마가 나와 함께 있을 때 아파서 참 다행이다. 컨디션에 따라 필요한 음식을 챙겨드릴 수 있으니 말이다. 누군가를 위해 좋은 재료를 사서 간절한 마음으로 요리하는 것. 이 세상 모든 엄마들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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