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2주 살기를 하는 동안 총 12군데의 식당을 방문했고, 그중에서 맛있었던 다섯 곳을 추려보았다. 선정된 이곳들은 나와 남편을 모두 만족시킨 가게들이다.본디공존이 어려운프로 입짧러와,애주가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가게는 그래도 내공이 있는 집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맛있었지만 굳이 여기서 꼭 안 먹어도 되는 음식, 즉 다른 지역에도 있는 흔한 메뉴의 음식들은 선정되지 못했으니, 앞으로 나오는 가게들은 여수에오면 꼭 먹어봐야 할 음식이라고 생각해 주셔도 좋겠다.
순서는 순위가 아님을 밝힌다. 그럼 소개Start!
1. 희망선어
선어회 모둠세트 3인기준 6만 원
매주 화요일 휴무. 브레이크타임 있음
여수시 동문로 10-10 (이순신광장 근처에 위치)
주차는 불가. 근처 공영주차장 이용
여수는 선어회가 유명하다고 한다. 선어회는 '숙성회'라는 뜻이다. 삼치, 병어, 민어 조합으로 구성된 모둠 선어회를 주문했다. 회를 좋아하는 남편도 민어 숙성회는 처음 먹어볼 정도로 귀하다고 한다. 나는 회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번에 먹은 선어회는 정말 맛있었다.
사람이든 회든 숙성되어야 멋이 나나 보다.
활어회가 탱글하고 쫄깃한 식감이라면 선어회는 입 속에서 부드럽게 녹아 없어진다. 비린내도 나지 않고 담백하다. 기타 잡내가 나지 않아서 향에 민감한 사람들도 충분히 먹을 수 있다.
'희망선어' 모듬 선어회
삼치, 민어, 병어 순
삼치는 1미터에서 1.5미터 정도 되는 횟감용 대삼치를 손질하신단다. 메인 사진에서 크게 썰려있는 왼쪽부터 두 줄이 삼치이다. 가장 왼쪽이 뱃살, 옆에 조금 어두운 부분이 등살. 오른쪽 위는 민어이고, 오른쪽 아래는 병어다. 먹는 방법은 세 종류가 다 다른데, 사장님께서 친절하게 먹는 법을 알려주시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먼저 준비된 김에 회를 짜지 않은 양념간장에 듬뿍 찍어 얹어주고, 묵은지와 각종 채소와 함께 싸 먹는다. 그 외에도 해산물 위주의 반찬들이 푸짐하게 나오는데 김치도, 미역국도 다 맛있고, 어떻게 조합해서 먹어도 좋다. 특히 회가 정말 살살 녹는다. 여기 정말 맛집이다. 다음에 여수를 오게 된다면 꼭 재방문할 의사가 있다.회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도 선어회는 여수에 오면 꼭 도전해 볼 음식이다.
2. 아와비
1인 기준 2만 3천 원
매주 일요일 휴무
전남 여수시 돌산읍 돌산로 595
주차 가능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집이 전복죽 집이라는 거다. 화려한 해산물을 먹다가 후에 나오는 전복죽을 깜빡 잊을 수도 있다.여수 해녀가 직접 잡은 자연산 해산물이 기본 찬으로 그득 나오는 집이다. 해삼, 뿔소라, 소라, 멍게, 숭어회, 성게까지. 총 7개의 해산물이 기본으로 제공된다. 우선 실물로는 처음 보는 성게가 시선을 강탈한다. 성게알이 들어간 전복죽은 먹어 본 적이 있지만, 성게그 자체를 수저로 퍼 먹어본 적은 여수에 와서 처음이었다. 푸딩 같기도 하고 슈크림 같기도 하고, 고소한데 기름지고 녹진한 그런 맛이다. 특별히 비린 맛은 없다. 성게는 온도에 굉장히 민감해서 조금만 더워져도 알들이 다 녹아내려 상품성이 없어지기 때문에 운반이 쉽지 않고, 그래서 내륙 지방에서는 웬만해서는 맛보기가 힘들다. 또 성게는 비싸고 고급 식재료이기 때문에 이 가격에 성게를 맛보는 경험만으로도 이 집은 올 만한 가치가 있다. 성게의 뾰족한 가시 부분은 툭툭 건드릴 때마다 계속 움직인다. 처음에는 살짝 거부감이 있다가 어느새쏠쏠한 재미가 생긴다. 그렇게 신선한 해산물들을 즐기다 보면 전복죽이 나온다.
전복죽은 내장을 함께 갈아 초록 빛깔을 띄고 있는데 아주 담백하다. 간이 조금은 심심한 편인데, 멍게나 소라가 조금 짜다 싶을 때 전복죽을 한 입 먹으면 입 안이 중화된다. 제공된 곁들이찬들과의 조화를 감안하여 애초에 조금은 싱겁게 간을 설계하신 듯하다.
전체 밥상의 밸런스가 아주 영리하다.
가볍게 전복죽을 즐기다가 성게를넣어 먹으면 또 녹진함이 한 스푼 추가된다. 죽을 다 먹어갈 때쯤에는 몸에서 열이 나고 땀이 쫙 났다. 그야말로 영양가 있는 음식들로 원기 회복을 하고 갈 수 있는 집이고, 1인 금액이 싼 편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제공되는 음식의 양과 퀄리티를 봤을 때 여기를 가성비 맛집으로 분류해야 맞아 보인다.여행을 왔을 때 비가 오거나 조금 으슬으슬할 때 온다면 대만족 할 만한 집으로 강추.
3. 호남갈비
돼지갈비 1인분(250g) 기준 1만 4천 원
휴무 없음 (매일영업) 11:30-21:30
전남 여수시 동문로 93-1
주차는 불가하나 주변 적당히 이용
호남갈비는 100년 가게이다. 100년 가게란 30년 넘게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집이라는 인증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50년 넘게 영업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평일 저녁시간에 방문했는데도 손님들이 엄청 많았다. 바쁜데도 불구하고 서빙하시는 분들이 정말 빠르게 필요한 것들을 가져다주셔서 서비스에는 불편함이 없었다.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반찬들은 새우, 서대회무침이 조그만 접시에 나오고(역시 여수!) , 야채도 푸짐하게 제공되는데 리필할 때마다 더 푸짐하게 주셔서 놀랐다.
맛으로 봤을 때, 돼지갈비는 그렇게 특별하기는 힘들다.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할 맛이고, 오히려 맛없기가 힘들지 않을까. 여기도 역시 맛있다. 특히 단 맛이 과하지 않아서 좋았다. 또 하나 히트는 불판. 스텐으로 된 판인데 여느 갈빗집의 것과는 조금 다르다. 숯불과 고기가 직접 닿는 부분이 최소화된 디자인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서인지 고기가 타지 않고 노릇하게 잘 구워진다.
또 놀랐던 것은, 공깃밥을 시켰을 때 된장을 포함한 7개의 반찬들이 추가로 제공된다는 것이다. 그중 토하젓(아주 작은 새우들로 만든 젓갈) 이 진짜 일품이었다. 토하젓은 처음 먹어보는데, 감칠맛이 장난 아닌 밥도둑.
소문난 집인데 먹을 게 있네요?
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을 좀 믿는 편이다. 특히 관광지에 있는 생방송투데이 같은 프로그램에 출현했다고 간판을 크게 붙여놓은 집 치고 '여기 진짜 맛집이다'와 같은 생각을 해 본 적이 거의 없다. 이 호남갈비 역시 여수에서 전통 있는 갈빗집이고 이미 유명한 집이라서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물론 다른 돼지갈빗집들과 비교해 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맛이 좋았고, 제공되는 기본 찬들도 푸짐하니 돼지갈비가 생각난다면 꼭 한번 들러서 먹어보면 실패 없이 기분 좋게 식사 가능한 가게이다.
4. 돌문어상회
돌문어삼합 大(3-4인) 기준 5만 5천 원
휴무 없음 (매일영업)
전남 여수시 하멜로 78
주차 가능
여수 낭만포차거리에는 돌문어삼합집들이 모여있다. 여수 현지인들은 거길 왜 가냐고 한다. 꼭 낭만포차가 아니라도 여기저기 많이 있기 때문이다. 가격이 조금 비싸고, 가격에 비해 양이 적다는 게 유일한 흠이다. 우리도 3인 기준 大 사이즈를 시켰지만 배가 충분히 부르지 않아 해산물을 추가해서 먹고, 갓김치 볶음밥까지 먹어고 나니 그제야 배가 좀 부른 느낌이 든다. 맛은 정말 좋다. 돌문어부터 전복, 주꾸미, 삼겹살, 새우가 있고, 갓김치와 부추, 단호박 등이 버터향과 함께 조화를 이룬다.
맛있는 것 옆에 맛있는 게 있고 그 옆에 맛있는 게 또 있다니, 이건 반칙이다.
돌문어삼합은 집집마다 디테일이 조금씩 다르다. 해물 종류야 비슷하지만, 어떤 집은 묵은지, 어떤 집은 배추김치, 어떤 집은 갓김치로 맛을 내는데, 여기는 갓김치가 나오는 집이다. 여수인데 그래도 갓김치여야 하지 않을까?
조금 더 맛있게 먹는 팁은 수분을 충분히 날려 보내고 먹으면 재료에 간이 배어 더욱 맛있어진다. 마지막에 갓김치 볶음밥은 날치알이 들어가서 톡톡 터지는 맛이 좋고, 역시나 수분이 날아가도록 충분히 눌어붙게 해서 긁어먹으면 맛있다. 게다가 하멜 등대와 케이블카를 감상하며 먹을 수 있는 창가 자리의 자리싸움은 치열하다. 젊음의 거리라는 분위기도 맛을 UP 시켜주는 요소 중 하나이다.
5. 석정
보리굴비 돌솥밥 정식 1인 기준 2만 5천 원
휴무 없음 (매일영업)
전남 여수시 시청서 5길 11-1
주차 불가하나 주변 적당히 이용
석정은 보리굴비 집이다. 부모님을 모시고 가도 참 좋은 곳. 누군가에게 정갈하고 잘 차려진 고급스러운 밥상을 대접하고 싶을 때 적절한 식당이다. 모든 반찬들이 유기그릇에 제공되어 정갈함을 더한다. 그렇다고 인테리어가 엄청나게 고급스러운 느낌은 아니지만 엄마 집에 온 것처럼 편안한 느낌이다.
정갈한데 정감 있다.
자리에 앉으면 가장 처음으로 물잡채가 제공된다. 애피타이저로 즐기고 있다 보면, 잘 손질된 보리굴비와 김치류들이 차려지는데, 김치 종류만 해도 다섯 종류이고, 토마토 김치도 은근 별미이다. 여기서만 맛볼 수 있는 해물보쌈김치는 특별하다. 소라, 낙지, 밤, 대추, 은행, 사과, 배로 속을 채워 오미자 물에 숙성시킨 김치이다. 따로 판매하기도 한다. 맛은 잘 익은 물김치 맛인데, 속 재료와 함께 먹었을 때 씹는 맛이 좋다. 단, 속재료들의 맛이 강하지는 않다. 김치의 맛을 해치지 않으나 영양가가 아주 많은 그런 김치라고 할 수 있겠다. 보리굴비를 즐기다가 함께 제공된 3색 나물에 밥을 비벼 먹어도 좋다.
펄펄 끓는 돌솥밥과 연잎물이 제공된다. 보통 보리굴비는 녹차물에 밥을 말아먹지만 카페인에 민감하신 분들을 위해서 연잎물로 준비하신다고 한다. 섬세한 배려가 느껴지는 순간이다. 밥을 퍼내고 물을 부어 놓고 식사를 한 뒤에 숭늉까지 마지막으로 즐기면 정말 배부르고도 깔끔하게기분 좋은 식사를 할 수 있다. 재방문이 언제쯤 가능할지 생각해 봤을 때, 가장 짧은 주기로 재 방문할 의사가 생기는 집이다. 한식이다 보니 가장 덜 질리는 메뉴이기도 하다.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다시 먹고 싶어 진다. 정갈한 한식이 생각난다면 바로 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