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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엄과 낭만사이 Mar 23. 2023

채용담당자인데 사내커뮤니케이션을 하라고요?

시시콜콜한 소통 이야기


직장은 소위 월화수목금금금... 업무강도가 세기로 소문난 IT 회사였다. 전사에서 제일 막내였던 내게 "여기서 업무를 배워두면 다른 데 업무는 껌이 된다"며  업무 경험도 아니고 센 업무 강도 그 자체를 자랑처럼 이야기하던 선배들의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기획업무 3년 차쯤 되었을까? 인사부서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해왔다. 광고가 전공이기도 했고 홍보 쪽 관심이 있었던 내게 채용과 사내 커뮤니케이션도 함께  담당해 보라는 제안에 마다할 이유가 없어 덜컥 그러기로 했다. 설렜다. 마침 엘리베이터에 소통을 위한 미디어보드(모니터)가 설치되었고 거기 게재될 소통 콘텐츠를 PPT 슬라이드가 지나가는 형식으로 자유롭게 기획하고 제작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라...


빈도는 자주, 시간은 아주 짧게 머물다 가는 곳.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곳. 어떤 이야기를 담는 게 좋을까?


3초가량의 짧은 메시지를  

여러 개 들어 돌리되 매일 바뀌면 될 것 같았다.


콘텐츠는 이리저리 해결이 될 것 같은데 전달 방식이 고민이었다, 위트 있게! 통통 튀게! 피식 웃을 수 있게! 전달하고 싶은데 딱딱하고 수직적인 문화를 가진 조직이라, 자칫 유치해지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내가 유일한 담당자였고, 업무를 대신해 줄 사람도 없어서 더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채용설명회를 나가는 날이면  다시 회사로 복귀해 야근을 하며 미디어 보드를 만들었다.


일단, 가장 최근 공지된 인사발령을 찾아 직책자 임명에 대해 승진 축하 메시지를 띄우고 생일자, 출산 소식 등 데일리로 직원들의 대소사를 챙겼다.


사람들이 좋아하겠지? 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짧고 쉬운 메시지들이 반복되는 패턴이 지루하다는 피드백이 들려왔다.


'콘텐츠 패턴이 다양해야 하는구나'


그때부터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리는 킬리만자로의 표범처럼 회사의 크고 작은 이야깃거리를 찾아 헤맸다.


어느 부서에서 언제 회식을 하는지, 중요한 외부 손님이 언제 오시는지, 내일 날씨는 어떤지 등 아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취합하고, 글쓰기가 취미인 수석님께 재능기부를 부탁드려 간단한 글귀도 연재받아 올렸다.


운영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 순간부터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런 이야기들이 들려왔다.


'○○팀 ○○님 생일이시구나~ '

'아 인사평가 오늘 까지지, 빨리 해야겠다'

'내일 비온대요 우산 챙겨야겠네'

'근데 저 미디어보드는 누가 만드는 거예요? 오타 있다' (T.T)

'오늘 월급날이네. 그럼 뭐 해 남는 게 없는데 ^.^ '

'오늘 점심은 된장찌개네요'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노출되고 있는 컨텐트를 주제로 스몰토크가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그로 인해 구성원들이 확실히 많이 웃었다. 조직 분위기도 유연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구성원들이 미디어보드에 관심을 가질수록  나는 지루함, 뻔함, 노잼이라는 부정적 단어들과 싸워야 했다. 더 위트 있게 표현할 방법은 없을까? 더 재밌는 교육 동영상은 없나? 고민을 할수록 내 퇴근 시간은 더 늦어졌다. 주변 동료들은 그만하면 됐다며 독려해줬지만, 이 업무는 오롯이 나 한 사람의 노력으로 다수에게 아침 시작부터 활력을 줄 수 있는 영향력이 있는 업무였기에 대충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증명할 순 없지만 그 활력이 생산성에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운영한 지 6개월 정도가 지났을까? 팀 또는 구성원들에게서 직접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대리님, 저 주말에 나들이 갔다 왔는데 노을이 예뻐 사진 보내드리니 미디어보드에 올려주세요'

'회사가 mou를 체결했습니다. 언론 노출도 물론 할 거지만 내부 직원들에게 먼저 알려주세요'


수동적인 소통이 참여하는 소통으로 바뀌는 순간!

혼자서 고군분투 하던 날들에 대한 보상이 주어지는 것 같았다.


지금 와서 말이지만 솔직히 매일매일 콘텐츠를 바꾼다는 게 쉽지가 않았다. 아이디어 고갈, 시각적 요소에도 변화 필요, 묘한 문구는 언제나 목말랐고, 새로운 소식과 직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절실히 필요했었다.


미친 듯이 그 업무에 열심이었던 그때의 내가 정말 자랑스러울 따름이다. 보통 담당자가 단독이고, 신생 업무이며, 안 해도 큰일이 안 나는 업무는 담당자 퇴사 시  업무도 함께 사라지는 경우도 많지만  내가 퇴사할 때  후임자에게 그 업무를 당당하게 인수인계하고 나올 만큼, 그 업무는 살아남았고

그 이후.. 후임자는 더 잘한다는 소리도 들려왔다.


조직문화는 아주 시시콜콜한 이야깃거리들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변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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