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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역띠 Jul 22. 2020

아내가 브런치에 합격했다

열등감에 대하여

아내가 브런치에 합격했다.


지난 7월 13일, 월요일 자로 내 아내는 브런치에서 정식 작가로 활동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나는 작년부터 꾸준히 브런치에 도전해 오고 있었다. 지금까지 브런치에서 받은 탈락 메시지만 무려 7번. 칠전팔기(七顚八起)라는데 다음번엔 합격할까. 도무지 기약이 없다.

- 그도 그럴 것이 브런치가 보내는 탈락 메시지에는 ‘보내주신 신청 내용만으로는 브런치에서 좋은 활동을 보여주시리라 판단하기 어려워 부득이하게 모시지 못하게 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 위 내용 참고하시어 재신청해주시면 다시 한 번 성실히 검토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적혀 있는데, 무슨 내용을 참고하라는 것인지…? 알 수 없다. -

     

시작은 내가 먼저 했으나, 합격의 기쁨은 아내가 먼저 누리게 되었다. 축하할 일인데 왜인지 기분이 착 가라앉고 우울했다. 도저히 함께 합격을 축하하고 기쁨을 나눌 마음이 아니었다. 그냥 나는 기분이 나빴던 것 같다. 왜 내가 아니라, 내 아내가? 그날은 퇴근 이후 바로 귀가하지 않고 곧장 집 근처 카페로 가 무려 4시간을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다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자, 아내가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빈손으로 들어오기 머쓱해 돌아오는 길에 사 온 조각 케이크를 건네자 아내의 낯에는 미안한 표정이 비쳤다. 초를 준비해야 했는데 깜빡했다며 괜한 너스레를 떨어 보았지만 아내의 미안한 표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나는 괜찮다고 아내의 등을 쓸어 주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정말 괜찮다고 가만히 아내의 등을 쓸어 주었다.


나는 아내가 브런치에 당당히 합격할 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진심으로. 그도 그럴 것이 아내는 지난 금요일에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하고, 주말 내내 신청 결과를 기다리면서 간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되면 좋고, 아니면 말지.’ 했던 내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이 되었는데도 결과가 발표되지 않자, 아내의 긴장감은 극에 달했고, 출근 내내 불안해하는 아내에게 나는 합격하든 합격하지 않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고. 그냥 하나의 타이틀일 뿐이라고, 그렇게 위로했는데… 왜 나는 태연해지지 못하는 걸까.


같이 케이크를 나눠 먹으려고 앉은 자리에서 아내는 내 어깨에 가만히 손을 올리고 “오빠, 괜찮아?” 하고 물어왔다. “응, 그럼. 괜찮지!” 하고 대답하려 했는데, 말 대신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간의 서러움이 터져 나온 모양이다. 떨어질 때마다 평가 기준도 명확하지 않고, 브런치가 인재를 못 알아보는 거라고 그렇게 스스로를 잘 달래 왔는데 사실은 하나도 괜찮지 않았다. 합격하든 안 하든 결국 책을 내고 작가로서 성공하려면 꾸준히 쓰는 수밖에 없다며 묵묵히 글쓰기에만 집중했는데 반복되는 탈락 메시지에 마음은 꾸준히 상처받고 있었나 보다.


“오빠가 나보다 훨씬 잘 쓰는데, 왜 이렇게 된 건지 나도 잘 모르겠어. 오빠는 잘될 거야. 무조건 잘 될 거야.”


아내의 무조건적인 격려에 그만 그치려던 눈물이 또 한 번 터졌다. 연애하면서도 한 번 보인 적 없던 눈물인데, 오늘 아주 유감없이 보여줬다. 아내는 덩치만 큰 어린 남편을 토닥여주면서 괜찮다고 괜찮다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해서 말해주었다.




카피라이터 정철 씨의 ‘사람사전’이라는 책을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102. 계단

거꾸로 읽어도 같은 뜻. 한 단계 한 단계 착실히 밟고 올라갈 것.
열여덟 계단을 아홉 번에 올랐다고 자랑하지 말 것.
건너뛴 계단 몇 개가 계단을 내려와야 하는 이유가 될 수도 있으니.

 - 정철, '사람사전' 중     



진부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사람마다 제각각 자신만의 속도가 있는 법이다. 먼저 가겠다고 두 계단씩 오르면 정철 씨의 글대로 내가 건너뛴 계단 몇 개가 내려와야 하는 이유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홧김에 안 한다고 던져두었던 브런치. 근데 글쟁이가 글을 안 쓸 수 있을까. 결국 다시 돌아올 거라면 포기하지 말고 또 한 번 도전해 보자. 혹시 아는가. 칠전팔기에 성공해서 정말 이 글이 성지(聖地)가 될지. 조바심 낼 것 없다. 그저 묵묵히 나의 단계를 밟아 나가면 된다.




- 아내의 브런치, '남편이 브런치에 합격했다'

   https://brunch.co.kr/@jfasd20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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