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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역띠 Jul 23. 2020

나는 오늘 작가가 됐다

- 작가에 대하여

‘아내가 브런치에 합격했다’를 쓰고, 곧바로 브런치에서 합격 메시지를 받았다. 이로써 나도 당당히 브런치 작가로 등록되었다. 칠전팔기(七顚八起)라지만 정말 일곱 번이나 떨어뜨리고 여덟 번째에 합격시킬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매번 떨어지다 보니, 합격에 대한 큰 기대를 가지기 힘든 상황이었다. 이번에도 글 한 편 쓰고, 있는 글 퇴고해서 다시 한 번 작가 신청. 담담한 느낌으로 다시 도전했는데 감사하게도 합격했다(처음엔 합격한 줄도 몰랐다. 그런데 이것저것 눌러보다 보니, ‘작가 신청’ 버튼이 사라지고, 이것저것 새로운 기능이 열렸길래, 나중에서야 합격인 줄 알았다).


간절히 바라던 목표였던지라 목표 달성의 기쁨은 상상 이상으로 달콤했다. 정말 기뻤다. 30대가 된 이후로는 뭔가 성취감을 느낄 만한 일이 없어서 더욱 값진 성취라고도 생각한다. 최근 몇 개월 간, 특히 아내가 브런치에 합격하고 난 일주일 동안은 마음고생이 심했다. 초조하고, 신경질 나고, 일에도 집중이 잘 안 되고, 그 사이에도 두 번이나 더 떨어져서 우울하고…. 그런 시간들이 촤르르- 영화 필름처럼 머릿속을 스쳐 가면서 안도감도 들었다. 합격해서 좋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작가가 된 것 같고 막 그렇다. 근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이 안도감이 나를 지금 이 상황에 안주하게 만들지는 않을까. 나태해진 나는 스스로를 또 한 번의 시련으로 데려가진 않을까. 작가 합격의 길까지 이끌어 준 이 예민함을 벼리고 벼려서 다시 한 번 분발해야 되지 않을까. 왜냐하면 브런치 작가 합격은 어떻게 보면 하나의 산을 넘은 것뿐, 책을 내고, 책을 팔아 수익을 내는 ‘진짜 작가’가 되는 길은 아직도 멀었기 때문이다.


아내가 나에게, 그리고 내가 아내에게 말해주었듯 브런치 합격 여부는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다. 작가라는 타이틀에 취해, 정작 중요한 글을 등한시한다면 결국 브런치 작가에 탈락한 것만 못하다는 의미이다.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글이다. 글을 쓰지 않는 사람은 브런치에 합격했다 하더라도 작가는 아니다. 신춘문예에서 등단했다 해도 글을 쓰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작가가 아니다. 조정래 선생님도, 이승복 교수님도, 알랭드 보통, 심지어는 헤밍웨이 할아버지가 살아 돌아온다 해도 더 이상 작품 활동을 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작가가 아니다.




소설가 김연수 씨의 산문집 ‘소설가의 일’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플롯은 ‘막 – 시퀀스 – 장면 – 비트 – 액션’의 순서로 구성된다. 플롯의 이런 구성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게 바로 액션, 즉 행동이라는 점이다. … 소설가라면 플롯의 시작점이 행동이라는 걸 알아야만 할 것이다. 그러니 먼저 소설가가 되어야만 소설을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먼저 뭔가를 써야만 소설가가 될 수 있다.
- 김연수, ‘소설가의 일’ 중


또 내가 예전 사각사각에서 쓴 글 중에는 이런 글이 있었다.


아일랜드 작가 브랜던 비언은 이렇게 말했다.

“비평가들이란 하렘의 환관과 같다. 매일 밤 그곳에 있으면서 매일 밤 그 짓을 지켜본다. 매일 밤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지만 그 자신은 그걸 할 수가 없다.”

비평가가 될 것인가, 작가가 될 것인가. 매일 밤 몰래 훔쳐보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젊은 작가들이여, 짜치고 허접해도 좋다. 매일 그 짓을 하자. 매일 매일 하자.
- 이경환, ‘글쓰기(19.08.18)’


작가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생각해 보면 나는 늘 작가였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그저 한 가지 길이 더 생겼을 뿐이다. 타이틀에 연연할 것 없이 나는 늘 해오던 일을 하면 된다. 이름뿐인 작가는 누구도 감동시킬 수 없다. 오랫동안 생각하고, 묵묵히- 쓰자. 그리고 자부심을 가지자. 나는 늘 작가였고, 오늘 나는 진짜 작가가 된다.



p.s. 그래도 제 이런 글이라도 읽어주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건 큰 기쁨이라고 생각합니다! 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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