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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역띠 Aug 23. 2020

나의 사랑하는 생활

_오래 남는 것들에 대하여

인스타를 보고 있으면 다들 근사한 취미 하나쯤은 갖고 사는 것 같은데 뭔가 나만 혼자 동떨어져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었다. 예고 없는 소외감에 이것저것 시도는 해 보았지만 3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죄다 그만뒀다. 대부분 힘만 들고 재미가 없었다. 간혹 재밌는 것도 있었지만 그런 건 보통 돈이 많이 들었다. 구관이 명관이라며. 결국 익숙한 것을 찾게 되었고, 꾸준히 해오는 취미는 축구, 노래하기, 글쓰기 이런 것들이다. 어디 가서 취미라고 이야기하기도 뭣한….



이 나이 먹도록 제대로 다룰 줄 아는 악기조차 하나 없다. 남들은 평생 친구라며 피아노도 배우고, 기타도 배우고 하던데 나는 나중에 더 나이 먹으면 누구랑 친구 하지? 또 건강 관리다, 인맥 관리다, 하면서 배우는 운동들도 참 다양하다. 테니스, 골프, 수상 스포츠, 스노보드, 요가, 클라이밍 등등 정말 각양각색으로들 배우고 즐긴다. 어릴 때 배운 피아노는 다 까먹었고, 기타는 한 달 배웠는데 영 소질이 없는 모양이었다. 근 20년 동안 남들 다 하는 축구만 주구장창 했는데 그마저도 무릎이 말썽이라 은퇴(?) 위기다. 나도 인친들처럼 몸 좀 덜 상하고 기품있는 취미 좀 만들어둘걸.






어릴 때 장기자랑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늘 초조했다. 나는 특별한 장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미리 준비라도 해온 듯 각자 저마다 개인기를 뽐냈다. 성대모사, 연기, 몸개그, 마술, 심지어 악기 연주까지! 그 중 가장 멋져 보이던 것은 단연 춤이었다. 장기자랑으로 춤을 준비해 온 친구들은 자신의 차례가 오면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앞으로 나와 진행자에게 원하는 음악을 부탁한다. 스텝들이 음악을 검색하는 동안 무대 중앙에서 쭈뼛거리면서 민망해하지만 곧 음악이 시작되면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쏟아내곤 했다. 언제 저렇게 연습을 한 건지, 나는 넋을 놓고 친구들의 현란한 몸짓을 구경하다가 어느새 내 차례가 오면 머뭇머뭇 앞으로 나가 멋쩍게 노래나 한 곡 부르고는 냉큼 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장기자랑에서 춤을 췄던 친구들은 대개 인기가 많았다. 나는 그게 부러웠다. 나도 멋있는 거 하고 싶다. 나도 내 차례가 오면 자신 있게 무대 위로 올라가 유행하는 남돌 안무로 무대 뿌수고 싶다. 나도 여자애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아보고 싶다. 지디처럼 양손 모으고 까딱까딱 셀럽 놀이도 해 보고 싶었다. 자취방에서 남몰래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춤 연습도 해봤다. 하지만 내가 셀럽이 될 수 있는 기회는 오지 않았다. 아니, 올 수 없었다는 게 맞겠다. 그렇게 셀럽이 되지 못한 채 십여 년의 세월만 속절없이 흘렀다.






한 살 두 살 나이가 들어가면서 내 취미가 춤이 아니라 노래라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나이 팔십 먹고 자식들 다 모인 자리에서 팝핀을 출 순 없잖은가, 노래 한 곡 하는 거면 몰라도. 운동도 그렇다. 테니스 실컷 치다 엘보 오면 라켓을 내려놓아야 하고, 보드 타다 다리 부러지면 다시 걷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가장 기본적인 것.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어쩌면 이런 것들이 우리 곁에 가장 오래 남는 것일지도 모른다.



요즘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감각 끌어올리기로 내가 선택한 운동은 달리기다. 매일매일 하루 5km씩 달리는 중이다. 오늘도 달리다 잠시 걷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장소를 가려, 돈이 들어. 일어설 힘만 있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걷기, 달리기 얼마나 좋아? 이런 게 평생 스포츠 아냐? BTS 춤은 못 따라 해도, 윤종신 노래는 내가 또 기똥차게 부르지. 꼭 악기를 다룰 줄 알아야 하나. 내 목이 평생 친구지, 뭐. 나만 즐거우면 됐지, 정작 남들은 아무 생각 없는데- 혼자서 남들이랑 비교하고, 열등감 느끼고 했다. 혼자.



내 사랑하는 생활은 걷기, 달리기, 노래하기, 이런 평범한 것들이 모여 이루어진다. 내 자랑스러운 취미, 내 사랑하는 친구를 열등감의 재료로 삼아왔다니 윤동주 시인처럼 부끄러워진다. 친구가 꼭 화려하고 특별할 필요가 있나. 있는 듯 없는 듯, 수더분하니 곁을 지켜주면 그게 친구지. 오늘은 퇴근하면 글을 한 편 써야지. 오늘은 잊지 말고 꼭 S에게 연락해서 안부를 물어야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공원 한 바퀴를 다 돌았다. 익숙한 코스를 한 바퀴 뛰고 나니 몸도 마음도 한결 가볍다.



… 쓰다 보니 친구가 너무 많은데…

출근길엔 차 안에서 노래나 실컷 부르면서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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