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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역띠 Jul 22. 2020

내가 나에게 해주고 싶었던  자그마한 이야기

나에게 보내는 작은 위로의 한 마디

어떤 이는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 의미 있는 사람들만 잘 챙기면 된다고.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는 없다고.


어떤 이는 이렇게 말했다.

꼭 좋은 사람이 될 필요가 있느냐고. 남의 눈치 볼 것 없이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살기에도 바쁘다고.


또 어떤 이는 이렇게 말했다.

좋은 사람이 대체 어떤 사람이냐고.


개개인이 지닌 가치관이 다양해지면서 ‘좋은’ 사람의 의미도 한두 가지로 정의할 수 없게 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각각의 의미는 다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능하다면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나 역시 그렇다.


좋은 사람에 대해 고민하다 보니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도 자유롭지 못한 어린 시절의 기억 하나.

대여섯 살 정도밖에 안 되었을 어린 시절의 나는 인사성이 참 밝았더랬다. 이웃들이 내게 지어준 별명이 ‘영국 신사’였을 정도이니까, 그 인사성을 넉넉히 짐작할 만하다. 내게 남은 자그마한 기억 속에도 나는 엄마 손 꼭 잡고 유치원 버스를 타러 나와 현관문 앞에서 맞은편 집 아주머니라도 마주쳤다하면 큰 목소리로, 고개를 꾸뻑 숙이며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던 어린 아이로 남아있다.


인사가 중요하다고 배웠기 때문이겠지만 그 어린 시절의 나는 인사를 하면 반드시 돌아오던 칭찬이 너무 좋아서, 그래서 자꾸만 어른만 보면 쪼르르 쫓아가 인사를 하곤 했다. 대여섯 살밖에 안 된 꼬마애가 칭찬 받을 만한 일이 뭐가 있었을까. 고작해야 인사를 하는 일이었을 텐데 꽤나 열심히 인사를 하고 다녔던 것으로 기억한다. 겨우 고개 한 번 숙이는 것으로 내게 주어지는 과실은 너무 달콤했다. 달달한 것이 으레 그렇듯 나는 곧 갈증이 났다. 자꾸자꾸 목이 말랐다. 그래, 나는 칭찬에 목이 말랐다.


그렇게 십 년의 세월이 흘러 중학교 3학년이 되는 동안에도 나는 칭찬에 목말라 있는 어린 아이의 모습 그대로였다. 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생이 되고,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되는 동안에 ‘영국 신사’는 이제 인사를 잘 하는 것만으로는 칭찬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던 것 같다. 어른들에게 인사도 잘해야 했고, 선생님들의 말을 잘 들어야 했다. 그리고 공부도 잘해야 했고, 질문에 대답도 잘해야 했다. 아이들과 잘 지내야 했고, 부모님을 실망시키지 않아야 했다. 열여섯 살의 아이가 그 모든 것들을 해내기에는 여건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시간도, 능력도 충분하지 않았다. 어릴 때보다 좀 더 부지런히 살아야 했다. 아니, 사실은 조금 많이.


부지런함으로 부족함을 메우는 것이 버거워질 때쯤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사소한 일에도 짜증을 냈고, 항상 날이 서있었다. 위장약을 먹어야 했고, 가끔 참을 수 없이 서러워지곤 했다. 넘칠 것만 같던 마음은 너무도 쉽게 바닥을 드러냈다. 많이 빈곤하고 황량한 마음으로 살아가던 나날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늘 목이 말랐다. 단 게 필요한데 이전처럼 누구 하나 나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남들에게 절대 내 마음의 가난함을 들키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내가 잘하는 것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나는 어른들에게 인사를 잘했고,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웃는 낯을 한 아이였다. 그랬다. 그땐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 시절의 나를 돌아보면 가여운 마음에 코끝이 따끔하다. 한 번 더 쓰다듬어 달라고, 잘했다고, 칭찬해달라고, 꼭 주인의 온정만 기다리는 강아지 같이. 어린 날의 내가 그리던 좋은 사람의 모습은 말하자면 그런 모습이었다. 나의 감정은, 나의 마음은 중요하지 않았다. 감히 그런 것들이 고려의 대상이 될 수는 없었다.


아이는 자라 어른이 되었다. 마음속 가장자리엔 여전히 혼자 훌쩍이는 어린 아이가 있다. 그리고 아이를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안타까워하는 내가 있다. 나는 아직까지도 쓰레기를 치우면서, 할머니의 짐을 들어드리면서 누군가는 칭찬해주지 않을까, 가끔 기대하곤 한다. 남들이 불편해하지 않을까, 혹시 피해가 되지는 않을까, 내가 그들을 실망시키지는 않을까, 하고 걱정하느라 웃는 낯으로 전전긍긍하는 내 모습에 남몰래 놀랄 때도 있다. 아직도 나는 어린 시절의 나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눈치를 본다. 이제는 너무 커 버려 스스로를 한 번 쓰다듬어 주지도 못하면서.


옳은 것도, 그른 것도 잘 알 수 없게 되어 버린 지금. 객관적으로 좋은 사람의 의미를 정의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제는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다. 나에게 있어 좋은 사람이란 이런 사람이라는 걸. 내가 알게 된 그 자그만 이야기를 아직도 내 마음 한 구석 어딘가에서 외로이 울고 있을 그 아이에게 위로 대신 전하고 싶다.


아프면 아프다고. 슬프면 슬프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괜찮지 않으면 괜찮지 않다고,
얘기해도 된다고. 그래도 된다고.

혼자 끙끙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혼자 무릎을 끌어안고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어떤 이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고.

어떤 이는 나에게 또 이렇게 말했다.

아니야, 좋은 사람은 이런 사람이라고.



나는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나한테도 좋은 사람이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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