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코코와 함께 산책을 나왔다. 알고 있다.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신이 나서 어쩔 줄 모르는 코코. 여느 강아지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우리 코코는 산책을 정말 좋아한다. 하지만 여느 직장인 견주들이 그렇듯 나 역시 바쁘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강아지 산책시키기에 소홀해지는 때가 많다. 이렇게 좋아하는 걸 보고 있으면 좀 피곤하더라도 매일매일 산책시켜야지, 다짐을 해보지만 퇴근 앞에서 다짐은 먼지보다도 하찮고 가벼워지고 만다. 그리고 다시 반성의 연속…
개무룩... 산책갈래?
산책을 갈망하는 눈빛 ㅋㅋ
변명은 여기까지 하고, 며칠 전 수업을 준비하다 이기호 작가의 '우리에겐 일 년, 누군가에겐 칠 년'이라는 소설을 읽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혼자 남은 어머니를 반려견 봉순이에게 맡긴 '나'. 십육 년 동안 어머니 곁을 지키다 떠난 봉순이가 사실은 훨씬 더 오랜 시간 동안 어머니의 곁을 지켜왔음을 깨닫고 자신의 지난 과거를 반성하게 된다는 내용의 아주 짧은, 초단편소설이다.
어머니와 십육 년을 함께 산 몰티즈 '봉순이'의 몸이 예사롭지 않은 신호를 보내기 시작한 것은 작년 이맘때쯤부터였다. 털이 듬성듬성 빠지고 눈가가 벌겋게 변해 가는가 싶더니, 아니나 다를까 올여름 어머니 생신 때 가 보니 치매기가 역력했다. 똥오줌도 제대로 가리지 못했고 베란다 유리창에 머리를 부딪치고 넘어지는가 하면 사료를 먹고 토하고 또 사료를 먹는 일을 반복했다.
… (중략) …
"자고 일어났더니 얘가 내 베개 옆에 가만히 엎드려서 빤히 내 눈을 바라보고 있는 거야…. 그래서 나도 잠결에 얘를 안아 주려고 손을 뻗었는데… 봉순이가, 봉순이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더라…. 그래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와서 봉순이를 왈칵 안았는데…. 그렇게 한참을 안고 있다가 봉순이가 엎드려 있던 곳을 보니까… 거기에 내 양말 두 짝이 얌전히 놓여 있는 거야…. 사람한테 일 년이 강아지한텐 칠 년이라고 하더라. 봉순이는 칠 년도 넘게 아픈 몸으로 내 옆을 지켜 준 거야. 내 양말을 제 몸으로 데워 주면서." - 이기호, '우리에겐 일 년, 누군가에겐 칠 년' 중
봉순이의 헌신적인 모습은 차치하더라도, 강아지들의 시간이 우리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이 새삼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모르고 있던 것도 아닌데 구체적인 숫자로 마주하니, 강아지와 사람 사이의 시간의 밀도차가 명확하게 느껴졌는데… 우리에겐 별 대수로울 것 없는 오늘이, 하루살이에겐 평생이고, 강아지들에겐 일주일일 수도 있다니….
누군가에겐 평생일지도 모르는 오늘 이 하루를 알차고 보람차게 보내야지, 따위의 깨달음은 잠시 뒤로 미뤄 놓더라도 내가 무심코 넘긴 하루가 누군가에겐 일주일도, 아니 평생도 될 수 있다는 것이 새삼스레 당혹스럽다. 내가 하루만 산책을 못 시켜도, 코코는 일주일 동안 바깥 구경을 못 하는 셈이다. 하물며 하루가 그런데, 어떨 때의 나는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나 자신에게조차 시덥잖은 핑계를 대 가면서 산책을 안 간 적도 많다. 그 시간, 그 망망한 동안을 도대체, 코코는 어떻게 기다려 온 걸까. 잠깐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미안함에 가슴 한가운데가 먹먹해 온다.
"오늘 안에 보내주고 싶구나."
소설 속 어머니는 먼저 떠난 봉순이를 오늘 안에 보내주고 싶다며 '나'에게 말했다. 상상하고 싶지 않지만 코코에게도, 나에게도 '오늘'이 찾아올 것이다. 아마도 나보다 코코에게 먼저 찾아올 확률이 더 높을 것이다. 많이 아프고 슬프겠지만 조금이라도 덜 울기 위해서라도 내가 더 부지런해져야만 한다. 내가 아무리 부지런히 따라가도 나의 하루는 코코의 하루에 닿을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당장 오늘, 지금 이 순간부터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속도로 코코의 하루를 쫓아가야만 한다. 그래야만 지금보다 밀도 높은 사랑을 코코에게 줄 수 있다.
강아지들의 일 년은 사람으로 치면 칠 년이라고 한다. 무려 일곱 배. 우리의 한 달이 그들에겐 일곱 달, 우리의 하루가 강아지들에겐 일주일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오늘은 너무 힘들었다고, 너무 바빴다고 외면하면 강아지들은 그 길고 긴 시간을 홀로 지새우게 된다. 집에 들어오지도 않고, 나를 예뻐해주지도 않는 주인놈만 하염없이 기다리면서. 춥고 가혹한 시간일 것이다. 공포와 권태, 원망으로 가득 찬 순간들일 것이다.
흐르는 시간을 붙잡을 수는 없지만 그만큼 밀도 높은 시간을 함께 보내 주어야지. 하루를 일주일처럼 사랑해 주어야지. 서둘러 더 많이 눈에 담고, 닳아 없어질 양 쓰다듬고,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안아 주어야지. 우기고 우겨넣어 터질 것처럼 아껴 주어야지. 견딜 수 없이 코코가 보고 싶다. 오늘도 퇴근길 발걸음을 재촉해 본다.